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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으니 Sep 27. 2023

물어라도 보지!

엄마의 슬기로운 생활의 0교시 수업.


간밤에 폭풍우가 휘몰아칠 뻔했다. 간담이 다 서늘했다. 아빠와 아들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가만히 생각하니 오늘 같은 일이 꼭 일 년 전에도 있었다. 나는 살면서 우리 집식구가 평범한 아빠, 아들, 평범한 엄마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니 어느 집에나 아빠들은 자기 주관이 뚜렷한 분들이 많다. 그 주관이 극히 평범함을 넘어서는 것에서 문제가 생긴다. 평범한 엄마, 아들은 주관을 강하게 주장하는 가장의 입김으로 고기압이 생기기도 하고 저기압을 형성하기도 한다. 어제가 그랬다.

어제 나는 저녁 파트타임으로 10시에 끝나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남편이 아들을 욕하면서 "오늘 저녁 가만히 두지 않겠다"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상갓집에 가기 전에 친척 제사에 다녀오면서 추석 명절 할 떡과 과일, 고기를 친척분이 어머님께 보냈다. 남편은 그것을 집에 놓고 다시 상갓집에 가느라고 아들에게 고기는 냉동실에 떡과 과실은 냉장고에 넣어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생 아들은 고기만 냉동실에 넣고 다른 물건은 정리를 하지 않고 상자와 보따리가 있는 물건들을 들어오는 현관에 놔두고 나갔던 것이다.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아들이 평범한 요즘 아들이 아니라 자신이 살았던 때처럼 부모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순종을 늘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는 요즘 다른 아이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옛날 내 사고방식대로 지시와 강요하는 말이 결코 아이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때려서 아이의 잘못을 깨닫게 하면 아이가 변할 거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다. 남편은 때려서라도 틀린 것을 고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상갓집에서 얼큰하게 취한 상태라 나는 빨리 저녁 산책을 다녀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술이 취한 상태가 되면 남편은 격하게 상한 감정을 드러내었던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오늘 저녁을 넘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먼저 내가 아들에게 이 상황을 전화로 물어보거나 말해주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들이 아빠가 잠들면 들어오기를 기도했다. 그렇다고 집에 들어오지 않거나, 늦게 귀가하면 더 힘이 들겠지만 그래도 기도 덕분인지 새벽 두 시에 남편은 깨어나 물 마시러 주방에 가는 것을 따라나서면서 아들 방문이 닫힌 것을 보며 안심했다.

작년에 이맘때 그날도 남편이 취했고 아들이 못마땅한 점들이 늘 있었다. 아들은 요즘 평범한 아이였지만 남편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아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아빠였다. 그때도  아들이 못 마땅한 이유일 것 같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아빠와 아들은 거실 마룻바닥에서 씨름 아닌 격투를 벌었었다. 그때 대학생이 된 아들은 어릴 때처럼 무조건적으로 아빠의 폭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아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사실을 시어머니에게 말했더니, 시어머니는 아빠가 아들에게 잘못을 하더라도 그렇게 한 것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아빠에게 "잘못했다"라고 하라고 했다. 나는 어릴 적에 남편이 아이에게 폭력적으로 한 일도 있기에 나는 누구 편을 들지 못했다. 아무리 아빠라도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들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후쯤 큰 아들이 외국에서 1년 만에 휴가를 내고 집에 들렀다. 그때 오랜만에 큰 아들이 와서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둘은 고양이와 강아지처럼 으르렁거렸다.

이렇게 나는 아침 0교시 수업부터 저녁 10시까지 일을 하면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들어왔다. 남편이 그래도 산책을 나가 나는 샤워하고 쓰러져 잠을 청했지만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남편이 들어오고 나는 남편이 하는 행동을 따라 내 눈이 움직였다. 그리고 남편이 잠들면 아들이 들어오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남편은 이른 아침부터 명절 선물을 사느라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피곤한지 잠이 들었고, 아들은 아빠가 잠든 후에 들어왔다. 어제 고기압 전선은 물러났지만 이 고기압 전선이 언제 만들까 걱정이다.

평범한 가족도 모두 각자 나름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평범한 엄마지만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지혜를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엄마의 0교시 수업"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해야 할까?' 하면서 말이다. 엄마의 0교시는 7시쯤 아빠가 일어나고 아이가 일어나 출근과 학교 수업 시간에 가기 위해 움직이면서 깨어나 화장실로 가는 아이에게 어제 왜, 현관에 음식들을 보따리째 놔두었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고기만 냉동실에 보관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아빠도 전화해서 현관에 물건을 왜 정리 안 했냐고 해서 아빠에게 죄송하다고 이야기는 했다고 했다.

이 사건을 생각하면서 <질문하면 달라진다>라는 책을 쓴 교수님의 강의가 생각났다. "물어라도 보지!"라는 말이 이렇게 중요하구나를 생각하게 했다. 사람들이 싸웠을 때, 각자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쌍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렇게 서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물어라도 보지!" 하는 말이 이렇게 중요한지 느꼈다. 아들은 아빠의 말을 건성으로 듣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물러보았다면 아빠가 화를 크게 내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나는 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물어보지 않고 다름 내가 해석하고 판단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제는 "물어라도 보지!"라는 말을 깊이 새기며 엄마의 '슬기로운 생활, 0교시 수업'을 마쳐야겠다. "딩동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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