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고 열심히 검색 중이었다. 마트의 와인 코너는 해마다 넓어지고 있었다. 올해는 김치나 밑반찬을 팔던 코너까지 모두 와인 병들로 채워졌다. 가끔, 혼자 술을 마시고 싶으나, 혼자인듯 느끼고 싶지 않을때, 나는 장바구니에 와인을 슬쩍 넣는다. 딸은 요즘의 이십 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실패의 확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빛깔도 좋고 예쁘고 풍미도 좋은 것을 고르고 싶다고 한다.
사실 큰딸은 술 마시는 걸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다. 물론,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는 즐겁게 술을 마시는 딸은, 집에서는 주로 누워서 지내는 터라 나는 반 농담 삼아 '와불'이라고 부른다. 딸의모습은 흡사, 습기를 머금은 눈의 무게를 못 견디고 부러진 나무의 형상과 비슷하다. 시간을 내고 정성을 들여야만 이어지는 관계의 범주에 엄마라는 존재는 포함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엄마란 항상 옆에 있는 존재다. 물론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자 애쓰며 아이들을 키웠다. 애정을 고파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건조하게 말라있던 뿌리에 물기가 돌고 촉촉해졌다. 쓰러진 나무가 몸을 일으킬 듯
기지개를 켜더니, 딸은 엄마와 장 보러 와서 함께 마실 와인을 고르는 중이다. 나는 와인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 내가 와인을 고르는 기준은 딱 한 가지, 저렴한 가격이다. 딸은 평소의 나라면 생각도 안 했을 가격대의 와인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골랐다. 냉장고에 있는 닭다리살을 간단하게 구워 와인과 먹으면 잘 어울리겠다는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공부를 하러 스터디카페로 가고, 남편은
모임 때문에 늦는 저녁. 오랜만에 와인잔을 꺼내
큰딸과 식탁 앞에 앉았다. 닭고기는 와인과 잘 어울렸다. 와인은 맛이 좋았다. 딸은 화이트 와인보다 레드와인이 단맛이 더 깊어서 좋다고 하였다. 화이트 와인은 산미가 느껴지고 맛이 좀 가볍다고 하였다. 달고, 떫고, 시고, 다양한 맛을 품고 있는 와인은, 직접 마셔 보아야만 맛을 알 수가 있다. 누군가의 리뷰나 영상으로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으나, 직접 맛을 보아야만 내가 좋아하는 맛인지 싫어하는 맛인지를 알 수 있다. 마셔보니 알겠다. 그동안 내가 마신 저렴한 와인들이 좀 떫었다는 것을, 이제는 한 모금 속에 더 깊은 맛을 품고 있는, 지금까지 마신 와인 보다 좀 더 비싼 와인을 마셔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딸 덕분에 나의 세계가 좀더 넓어졌다.
뿌리에 물기가 돌고 딸아이의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포도주는 잘 익어야 제맛이 난다. 그러나
그것은 햇볕과 바람의 일이다. 제 한 몸만큼의 작은 존재라는 깨달음에 이르러서야, 부글거리는 요동을 멈추고 고요히 침전하여, 기다림의 시간에 이르겠지. 딸과 내가 오늘의 잔을 부딪치며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내일의 잔에는 무엇이 담길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