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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Feb 01. 2024

내가 좋아하는 시간

 식구들이 제각기 자신의 해야 할 일 때문에

다 나가고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나는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나 음악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고  나무 빨래판을 눕히고 세탁물에 비누칠을 하고, 벅벅벅 거품을 내며 손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밑반찬을 만든다. 임윤찬도 듣고, 말러도 듣고 이문세도 듣고 이무진도 듣고 장필순도 듣는다.

음악도 특별한 취향이 없고 듣기에 좋으면 듣는다. 근래, 한동안은 '헤어질 결심'에 나온 노래'안개'에 빠져 한동안 들었더랬다. 정훈희의 안개는 그윽하고 아련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견디어 내는 힘이 있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신명이 난다.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로 유명하고 타샤의 정원으로 잘 알려진 타샤튜더는 집안일을 하다가, 정원을 가꾸다가도 차를 마시며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으니, 가정주부야 말로 참으로 행복한 직업이라고 하였다. 타샤튜더는 이혼 후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참으로 전쟁과 같은 일상이었을 것이나, 잠시의 여유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행복한 직업을 가졌다. 운이 좋게도 내가 갖게 된 것들을 인정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생활비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좋겠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행복하지 않은지, 또는 돈 버는 것만큼이나 제 몫을 하며 얼마나 버겁고 힘들게 사는지 설명하려 애쓰던 순간들이 있었고, 억울해하기도 했다. 때론 나도 존중받고 싶었다.



마늘을 까거나 파를 다듬거나 생강을 까는 등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할 때면 영화를 본다. 영화는 한 번에 다 못 보고 부득이하게 나누어서 봐야 할 때가 많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오토라는 남자"이다. 예전에

"오베라는 남자"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톰행크스 주연으로 리메이크되었나 보다."오베라는 남자"영화도 있다.

원칙, 외로움, 사랑, 따뜻함, 이웃, 그러한 것들로 점철된 영화였다. 오베가 죽는 장면에서는 알고 있음에도 눈물이 났다. 오베는 죽기로 결심했던 때로부터 삼 년을 더 살고 세상을 떠났다.

이웃이 건네주는 따뜻한 음식이 오베를 더 살게 하였을 것이다. 마늘 한 접을 다 깔 무렵 영화가 끝났다. 알타리 김치를 담가서 혼자 살고 있는 동생에게 다녀와야겠다. 동생과 함께 세상이야기나 잠시 나누고 와야겠다.

이 모든 시간이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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