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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방에 사는 여자
Oct 19. 2024
도서관 에세이 수업 시간에 '공간'이라는 주제로 글을 한편 써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공간이라는 주제로 무슨 내용의 글을 쓸까?
입속으로 말을 굴려 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의 추천 책인 ' 내방 여행하는 법'을 검색해 보니 수업 중인 도서관에는 없었다. 도서관 앱으로 검색해 보니 책이 있어서 상호대차를 신청했다. 며칠 후 책을 대출해서 읽어 보니 이 책의 제목이 "한밤중, 내방 여행하는 법"이었다.
저자가 "내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책을 출판한 후 8년 만에 낸 책이었다.
가족 중 가장 작은 방을 갖고 있는 나의 위치에 대하여 쓸까? 지금껏 지나온 방들에 대하여나, 허물어져 가고 있는 시골의 빈 집에 대하여 써볼까? 그간 지나쳐 온 방들에 대하여 쓸까?
궁리를 해보았다.
공간은 나에게는 아직도 결핍과 욕망의 대상이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존중과 주도권을 장착한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배달된 두루마리 화장지가 쌓이고, 청소기가 한자리 차지하는, 작은 내방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언니네집과 우리 집을 짐짝처럼 왔다 갔다 하실 때 쓰던 방이다. 조기를 구워 작은 상에 밥상을 차려 거실에서 드시게 하고, 아이들과 남편은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아버지옆에서 조기를 발라드리고 아버지 밥상머리에 앉았다가 늦게 저녁을 먹었다. 행여, 연세가 있으셔서 잘 흘리는 아버지를 남편이나 아버지가 싫어할까? 염려가 되었다. 아버지 역시 식탁에서의 식사를 어색해하셨으나 나는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원활한 대화가 어렵고 소통이 안 되는 아버지는 어린아이 같았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신경 안정제를 먹고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채우는 아버지를 보면 죄책감이 들었다. 매일 차려내는 밥상에 " 맛대가리 없다!"라고 하시면 뒤돌아 설거지를 거칠게 했다.
"미안하다!" "고맙다!" 이런 말들을 들었다면
많은 상황들을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집은 상처를 기억한다.
내가 외로울 기미가 보일 때, 막막함이 한가닥 떠오를 때마다 나는 카페로 간다. 약속이 없어도 카페에서 두세 시간을 머무른다. 주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두세 시간은 귀중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세상과 약간씩 연결되기도 하고, 아련한 과거로 흘러갔다가 미래를 기웃대기도 한다. 철학자와 함께 산책을 하고 책 속의 인물이 되어 보기도 한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집에서 십 분 거리에 있다. 일인용 좌석에 앉으면 창밖의 하늘과 공원의 나무들을 맘껏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오픈 한지 오 년이 된 카페는 그동안 주인이 세 번 바뀌었고 넓고 손님이 제법 많은 편이다. 조명이 어두운 편이라서 주로 밝은 오전이나 한낮에 이용한다.
두 번째로 자주 가는 카페는 마트 위층에 있어서 동선이 편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을 봐서 갈 수 있고, 조명이 밝아서 흐린 날이나 저녁에 시간이 날 때 주로 이용한다.
일주일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 카페에 간다.
올봄, 커피를 끊기 전까지는 제일 저렴한 커피를 마셨으나 이제는 차를 마신다. 티백 하나를 넣어 줄 뿐인데 가격이 커피 가격에 세배가 된다.
커피가 워낙 저렴했다. 돈이 많이 드는 건 아닐까? 잠시 망설이기도 하였으나 나를 위하여 작은 사치는 용납하기로 했다. 작은 즐거움이 나를 숨 쉬게 하고 좀 더 멀리 데려갈 것이다.
공간에 대하여 나는 여전히 쓸 이야기가 없다.
나는 공간 빈곤자이고 결핍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