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영원히 붙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by 움직이기

히바의 밤은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케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으면 이찬칼라는 알라딘이 카펫을 타고 날아다니고 시샤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신비로운 페르시아 분위기로 뒤덮일 터였다. 그러나 히바에 아라비안 나이트는 없었다. 미동 하나 없는 깊은 적막에 잠긴 요새. 지금 여기에 나 혼자 뿐 인가? 그야말로 지구 종말에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나올 법한 세계였다.

밖에 나가고 싶지만 어디서 떠돌아다니는 고대 영혼이라도 마주칠 것 같았다. 사람도 없는데다가 오래된 옛터가 많아서 특유의 오묘한 느낌이 있었다. 게다가 영혼은 꼭 주인공이 혼자일 때만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가.

"나 지금 히바에 있어." 에미르에게 연락을 했다.


에미르와 나는 그렇게 주마모스크(Juma masjid) 앞에서 재회했다. 히바에 왔는데 잽싸게 연락도 안하고 뭐했냐, 숙소는 대체 어디냐, 밥은 먹었냐는 둥 세상 반색하는 에미르를 보니 긴장된 마음이 대번에 풀렸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좋은 거였다.

주마는 금요일이란 뜻이고, 금요일은 무슬림의 예배하는 날이다. 이 목조 예배당은 10세기에 처음 지어져서 여러 번의 재건을 거쳐 18세기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단다. 주마모스크는 아치형 창문이나 돔 없이 단층으로 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문양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212개의 나무기둥이 천정을 받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주마모스크를 지나 칼타미노르 미나렛(Kaltamonor)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압도적인 부피와 질량을 자랑하는 미나렛! 칼타는 투르크어로 짧다는 뜻이란다. 이 미나렛은 1852년 착공되어 3년 후 1855년 미완성된 상태로 중단되었다. 당시 히바지역의 지배자 무함마드 아민 칸은 당대 최고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높은 미나렛을 짓고 부하라를 감시하려고 했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부하라의 에미르 칸은 기술자를 매수해서 공사를 중단시켰다. 부하라로 도망가던 기술자는 아민 칸에 의해 죽게 되었고, 그래서 미나렛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본래 70-80m 높이가 되었을 미나렛은 허리가 잘린 채, 현재는 “짧은” 26m라고 한다.

푸른색과 녹색, 흰색, 주황색 타일과 문양이 층을 이루어 일정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무거운 첨탑이지만 간결하고 청아한 느낌을 주는 무늬와 색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진지하고 심각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생각을 깨며 치고 들어오는 재기발랄함이 느껴진다랄까?


시간은 벌써 자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에미르와 같이 걸으니 어두운 골목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습하게 느껴졌던 공기는 어느새 가벼워져 있었다. 나는 이제 무겁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우리의 대화소리는 이찬칼라의 깊은 적막을 깨뜨리며 울려 퍼졌다. 우리는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카페를 찾아 성 밖으로 나왔다.

그때, 장엄한 감동이 순식간에 내게 밀어닥쳤다.

어둠이 잠식해버린 황량한 터, 귓전과 온몸에 파편처럼 마구 부서지는 사막바람.

충만하고 황홀했다. 마치 나는 지금, 여기만 알고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내 안의 의식은 무척이나 또렷했으며 몸에 느껴지는 감각은 예민하고 섬세했다.

나는 이 순간을 이 손바닥 안에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마치 애원하듯 생각했다.

손가락사이로 홀연히 빠져나가는 이 순간을 처절히 직시하면서.




keyword
이전 13화히바 행 새벽열차를 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