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바 바자르, 여기는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

by 움직이기

신선한 아침 공기가 여행자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어제보다 훨씬 따뜻하고 부드러운 날이었다. 밖에는 벌써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이 많이 보였다. 길거리에는 참새 같은 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찬칼라 밖 주민들이 사는 조용한 동네 어귀의 새 숙소로 이사하는 중이었다.

새 숙소의 방은 아늑하고 조용했다. 창문 밖으로는 동네의 공터가 하나 있었다. 공터를 감싸고 늘어선 집들과 메마른 흙바닥, 헝클어진 나무들이 보였다.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 대화하는 어른들 소리, 자전거 소리와 새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다. 사람냄새가 났다. 창문을 타고 넘어 유연하게 들어오는 바람에는 어렴풋한 봄 냄새가 있었다. 어제는 그렇게도 앙칼진 칼바람이 불었건만 히바에 봄이 오고 있나보다.


숙소를 나왔더니 동네풍경이 수채화마냥 펼쳐져 있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다르게 생긴 집들, 구석구석 작고 평화로운 골목들, 울퉁불퉁한 흙바닥과 오돌토돌한 시멘트바닥.

동네를 산책하면서 느리고 평온한 시간 속에 푹 잠겼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그저 표류할 뿐이었다. 무 자르듯 속 시원하게 답이 나와 주면 참 좋겠는데, 당최 이 질문들은 어째 혼돈과 중립지대에 떡하니 걸터앉아서는 물음표만 달고 앉아있는 것인가.

지금 이 시간의 의미와 가치를 현재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 여정이 끝나고 불순물이 다 가라앉고 맑은 물이 떠오를 때쯤에는 진실한 나에 한 발짝 정도는 가까워져 있으리라 믿어보는 것이었다.



이찬칼라 서문 앞에서 에미르와 만났다. 이찬칼라 서문 앞 풍경은 전형적인 관광유적지의 모습이다. 장신구나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커다란 관광차와 승합차, 자가용까지 아주 빼곡히 들어찼다. 우리는 히바 바자르까지 걷기로 했다. 걸어서 40분 정도가 되는 거리인데 날씨도 좋고, 우리는 뭐 딱히 바쁠 것도 없는 여행자들이니까 말이었다.

관광지 속을 벗어나서 걸으니 금세 지역주민들이 사는 일상의 터전이었다. 꽃가게와 사진가게, 가구점과 문구점, 작은 가게들과 학교를 지나쳤다. 얼굴 생김새가 각기 다른 두 명의 외국인들이 신기한지 지나가는 아이들마다 우리를 바라보며 수줍게 혹은 장난스럽게 인사를 했다.



저 바로 앞에 길가를 점령한 노점들을 보아하니 시장에 도착했나보다. 매대 마다 오렌지며 토마토며 사과며 알록달록 빛깔 좋은 과일이 산더미로 쌓여있었다. 서로들 값을 부르며 흥정하는 소리, 리어카 소리, 꽉 막힌 도로에서 나는 경적소리 혹은 박수소리 같이 수선스러운 것이 한데 얽혀 복작복작했다. 아니 온 동네 사람들이 여기 모였는지,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가만있어보자. 보아하니 여기는 그야말로 중앙아시아 버전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이 아닌가!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화장품, 옷, 신발 등 생필품이나 각종 식료품을 파는 가게들도 많았다. 샤슬릭(양꼬치)과 솜싸를 파는 식당도 있고, 맛난 빵과 갖가지 뻬쳰예를 파는 가게도 빼곡했다. 이국적이고 흥미로운 시장풍경을 담느라 두 눈은 정신없이 바쁘다. 디저트를 파는 가게 앞에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 와... 이렇게나 알록달록하고 다채롭고 속 튼실한 디저트를 보았나! 다 쓸어 담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호두파이처럼 생긴 디저트를 한 입에 쏙 넣었다. 몸이 사르르 내려앉는 것 같은 이 달달하고 부드럽고 행복한 기분!



터키사람이 그런 건지, 아니면 혼자 오랜 시간 여행을 하면서 짬밥이 쌓여서 그런 건지 에미르는 본인보다도 한참 나이 많은 우즈벡 상인 분들과도 대화를 거침없이 술술 했다. 중간 중간 툭툭 가격흥정을 해가면서 말이다. 에미르는 바자르에선 무조건 흥정을 해야 한다며 제 돈 그대로 주고 사는 법은 절대 없는 법이라고 내게 귀띔했다. 그런가? 나는 시장에서 깎아달라고 해 본적 없는데... 나 같은 애들이 호구다.

우리나라가 터키를 흔히 "형제의 나라" 라고 하는 것처럼, 우즈벡과 터키도 같은 형제의 나라라는 민족적 정서적 끈을 나누고 있단다. 언어도 비슷해서 60-70% 이상 서로 소통이 된다고 했다. 에미르는 나에게 ‘형제애’라는 뜻을 담은 "카르다쉬" 라는 단어를 알려주었다.

에미르는 어느 가게에 가든지 "카르다쉬" 를 그렇게 외쳐대었다. 양 팔을 넓게 벌리기도 하고, 가슴을 툭툭 치기도 하고 아주 세상 다채롭게 몸을 써가며 흥정을 했다. 아니 어쩜 저렇게 능청맞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이런 상황이 좀 낯설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멀찌감치 서서 하릴없이 땅바닥이나 보고앉아 있었다.

“아니 참나 이 사람아! 더는 못 깎아 준다니까 그러네 이 사람이” 상인분은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나를 이따금씩 바라보셨다.

“얘! 어디 꾸어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서 있지만 말고 이 터키 애 좀 어떻게 해봐라” 라는 눈빛으로.







keyword
이전 14화이 순간을 영원히 붙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