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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질시스터즈 Nov 02. 2020

다음 웹툰 <창백한 말>,  핏빛 로맨스에 대하여

마녀의 일그러진 일생과 사랑 이야기

▶ 11월 첫 번째 에디터 강졔의 Pick, "로맨스 판타지물"


 

불로불사의 사랑 이야기는 많은 독자를 매료하는 소재임은 분명하다. 무한한 삶과 죽음의 무게를 담아낸 <창백한 말>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불사의 존재, 영원한 사랑, 집착과 애증이 복합적으로 얽혀진 서사를 뛰어난 작화와 몰입도 높은 연출로 그려내 1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아왔다.     


로즈 뒤프레

    

마녀라는 캐릭터

    

 작 중의 마녀, 로즈는 세계관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외모로 고통받으며,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불사의 존재로 등장한다. 이 아름답고도 신비한 존재는 그 외모만으로 작중의 모든 남자들뿐만 아니라 화면 바깥의 독자들까지 매료한다. 작품 전체를 조망할 때, 로즈의 이러한 외모 설정과 작화는 그녀가 단순히 미형의 캐릭터임을 알려주기 위한 도구는 아니다.


 레몬의 등장 이후, 창백한 말은 13살 시골 소년 소녀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서 판도가 크게 뒤바뀐다. 아름다운 어린 소녀가 자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남자아이의 친 형의 피를 빨아 마시고 살해하는 마녀로서의 행보는 독자가 예상하던 이야기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충격을 안겨주었다.

     

로즈는 사람을 먹는 불사의 존재로, 마녀라 불리며 세간의 혐오를 받는다.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등장했던 불로불사와 달리, 로즈는 흡혈의 본능과 인간의 정체성 사이에서 처절하게 고통받는다. 기존의 영생은 권태를 상징해왔으나, 창백한 말은 살인이 전제된 영생으로 인해 수 천 년 간의 세월 동안 저질러 온 죄악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로즈의 번뇌와 고통을 지속적으로 조명한다. 그녀의 인생과 사랑이 평안할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작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치장한 로즈의 인격은 결코 평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흡혈의 본능을 혐오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과 변덕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마녀의 양면적 모습이 작품 전체에 걸쳐서 끊임없이 그려진다. 이 때문에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기도, 또 가증스럽기도 하다. 로즈는 단지 아름다운 외모만으로 남자를 홀리는 요부, 헤픈 창녀로 불리며, 아름다운 여자라는 이름의 장신구 혹은 한 가문의 상속 재산 취급을 받는 가련한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긴 세월을 고통받으면서 뒤틀리고 일그러져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 아름다운 외모 혹은 불사로 인해 사람으로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로즈는 인간을 닮고 싶어 하고 증오하기도 하며, 자신의 죄에 괴로워하고, 도망치고, 마주하고, 외면하는 것을 반복하며 인간에게 온전히 사랑받기를 원한다.      



    

   

창백한 말의 연재 기간 내내, 독자들은 과연 불사의 존재를 인간의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일지? 자문하게 되는데, 우습게도 창백한 말은 특유의 작화로 빚어낸 로즈의 아름다운 외모만으로 독자들이 그녀가 저지르는 모든 혐오적 행보를 일부분 납득하게 만든다. 그녀의 원죄가 종국에 어떠한 방식으로 결말을 맞이할 것인지야말로 독자가 마지막까지 작품을 기다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두 남자와의 로맨스

   

사실상 과연 누가 최종 남자주인공이 될 것인지야말로 독자들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진리를 깨우치고, 로즈와 함께 영생을 살아가는 남자와 로즈를 인간으로서 이해하며 포용하는 남자 사이에서 작가는 쉽게 무게추를 기울이지 않는다.     


레몬은 로즈를 제외한 유일한 영생의 존재로서 수백 년, 혹은 그 이상 그녀와 함께하며 로즈의 흡혈과 폭주를 돕고, 보호해온 인물이다. 로즈의 오랜 연인으로서, 오직 로즈의 사랑만을 맹목적으로 열망하며 헌신한 레몬은 수많은 죄악을 저지른 로즈의 유일한 보금자리 혹은 완벽한 한 쌍으로 보인다. 사랑이란 이름 아래 보이는 레몬의 행보는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집착과 광기로 얼룩져있으며, 인간성을 바치고 진리를 얻은 레몬과 인간성을 버리지 못하는 로즈의 관계는 긴 세월 동안 뒤틀리고 일그러진다.  



로즈와 레몬

             

또 다른 남자주인공인 페터는 어린 시절 자신의 형을 죽인 마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냥꾼의 길을 나선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자리를 자신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심장을 내어주며 사죄한 그녀를 결국 어린 시절 품고 있던 마음 그대로 다시 사랑하게 된다.      

페터는 자신의 죄악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로즈를 인간으로 포용하는 유일한 이해자 이자 연인이었으나, 형을 죽인 로즈를 완전하게 용서하지 못한 채 고통받는다. 그들의 사랑은 또 다른 죄악으로, 로즈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과 복수심, 그녀와 통정한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페터는 결국 또 다른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로즈와 페터



10년 전 네이버 베스트 도전에서 처음 연재를 선보인 창백한 말은 작화 화나 만으로 상당히 센세이션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의 고통과 번뇌를 바라보는 추혜연 작가만의 해석과 이를 뒷받침하는 괄목할 만한 작화와 연출이야말로 이 작품이 대체될 수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글. 강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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