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드니까요. 마치 경쟁구조에 동참하지 않으면 별종처럼 보기도 하고요.
저에게 경쟁은 꽤나 어렵고도, 불편한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결단하고 용기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은 더더욱 어렵고요.
경쟁하지 않고, 나만의 안식처를 찾아 살 순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했던 탈서울.
탈서울을 꿈꾸는 저에게 있어서 동경의 삶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내 주관을 가지고,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스럽게 살 줄 아는 삶.”
“내 주관을 가지고, 경쟁하지 않는 것.”이란,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알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고,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를 택한 것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경쟁을 위한 노력도 힘들고, 무엇보다 타인을 이겨야만 내가 승자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그 구조자체도 지겹고요.
경쟁하지 않고 더불어 산다는 개념은 좋지만, 생각보다 녹록치 않습니다. 재밌다가도, 재미없기도 하고요. 그래서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할지는 여전히 답을 찾고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려면 무엇을 고르고 포기해야하는데, 포기하는게 어렵더라고요. 앞으로의 내가 답을 내릴 날이 있으려나요.
“스스로 만족스럽게 살 줄 아는 삶“.
그래서 저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이것에 더 집중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찾는 ‘행복’이라는 것은, 결코 크지 않습니다.
크지 않고, 오히려 작고 잦아야 합니다.
작고 잦은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나오니까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타인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만 같습니다. 넓은 집, 좋은 직장, 비싼 차, 성공한 배우자와 자식.
남들 따라 사는 것 말고, ‘스스로’라는 단어가 서로에게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저역시도 나 스스로의 만족을 찾아나가고 싶습니다.
어떤 점에 있어서 ‘서울’은 상징의 의미기도 합니다.
남들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좋은 것’을 찾아 살겠다는 다짐의 의미입니다. 그러고보면 탈서울을 한 것만으로도, 나 스스로가 좋은 걸 찾겠다는 여정의 시작점이었네요.
그 시작도 이제 한 페이지가 마무리되는 기분입니다. 탈서울 적응기 연재가 끝이 났으니까요.
약 8개월 저도 연재를 하는 동안 만 명이 넘는 분들이 저의 글을 읽어주셨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첫 연재인 만큼 많이 부족했네요. 부족한 만큼, 앞으로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겠습니다. 시간 내서, 혹은 한 문단이라도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일상 속 탈서울이든, 진짜의 탈서울이든
뭐든 되었든 간에, 그저 마음 무탈하게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