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것만큼 설레는 일도 없다.
겨울이 오고 봄이 오는 계절은 춥고 어두운 시기를 지나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며,
봄이 지나 여름이 오면 찬란한 빛을 받는 밝음이 오래될 것만 같은 기대감도 든다.
여름이 되어 가을이 오는 지금은,
들떴던 마음이 정돈되어 무언가 차분하게 주변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20대의 불안하던 감정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작고 사소한 일들에 흔들리던 그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덜 힘들까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만큼 심리 서적에 대한 책도 많이 읽고, 나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상담도 꾸준히 받던 시기도 있었다. 30대가 되면 마음이 좀 더 평안해졌다던, 그 누군가의 30대처럼 나 역시도 그렇다. 복잡하고 속 시끄러운 서울을 떠나온 것 역시 평안한 삶을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누군가에게 내가 ‘단단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만큼 나를 기쁘게 한 칭찬도 없다.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 노력한 수많은 노력과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게 한다. 그렇게 삶에 대한 미련도 없었으면서, 무엇이든 노력하며 살던 시간들 말이다.
지금은 삶에 대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그다지 특별하게 느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가 이전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라는 자신이 든다. 분명 지금의 나는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 투성이며,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비교 대상이 타인도 아닌 이전의 ‘나’라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전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낫다고.
그러면, 지금 내가 이룬 게 없더라도 나는 괜찮은 사람인 게 아닐까? 그냥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이룬 것이라든가, 가진 것이라든가,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30대 중반이 다 돼가는 이 시점에서,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삶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하는 것을 덜어내기로 했다.
하루 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만 집중해 보기로 했다.
나이가 들며 생기는 고집이나 아집, 나보다 어린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태도, 내 생각이 맞다며 좁은 식견으로 결정하는 일들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자꾸만 마음을 다지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고쳐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기로 했다.
나이가 들면서, 익숙한 것에 익숙해지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것들을 도전해 보고, 새로운 것들도 먹고, 새로운 곳을 가보며 새로운 곳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이 오래된다고 해서 그 오랜 인생을 함부로 허비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라도 오랜 인생이 아닌 찰나의 인생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불안감의 연속인 삶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 없는 오늘을 보내다 보면 그 언젠가 무언가 남지 않을까. 그냥, 뭐든.
이렇게 말하니 엄청나게 나이 든 노인이 쓴 글처럼 느껴져서 우습기도 하지만.
솔직히 여전하다. 여러 고민들을 떠안고 살지만, 그걸 바라보는 나는 분명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무덥던 여름도 지났다. 찬바람이 부는 시원한 가을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듣기 싫은 알람을 끄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듣는 노래 하나마저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니.
좋은 가을이다.
*이렇게 마무리해도 되나 싶지만 다음 편이 30편 마지막입니다. 여전히 서울을 떠나 생활 중이지만, 아직 여전히 진행 중이라 함께 나눌 이야기들이 더 있을지 모르겠어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을지 고민해 보다가, 결국 30편 지금의 상태로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