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끝무렵, 친구들과 함께 수원에 여행을 갔었다. 그 이후 불과 몇 개월 만에 나는 수원에 정착했다. 그땐 분명 수원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의문을 갖고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선명한데.
이 글은 수원에 여행 왔던 그 순간에 썼던 글에, 조금 더 글을 덧붙여 썼다. 수원 시민이 되기 전과 후로 나뉘어 두 가지 감정과 생각이 섞인 글이다.
도착지는 화성행궁. 친구들과 화성어차를 타는 매표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화성어차는 수원 특색의 지역열차이다. 수원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임금님이 타고 다녔다는 어차를 활용하여 '화성어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래 사진처럼 맨 앞은 자동차로 운영되지만, 자동차 뒷칸들은 모두 열차처럼 개조를 해두었다.
수원에 왔다면, 화성어차는 한 번쯤 타볼 만하다. 우리가 작년에 화성어차를 탔을 때는 산위쪽으로까지 올라가서 오히려 관광하기 더 좋았는데, 올해 여름에 다시 타보니 산위쪽까지 가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화성어차를 타고 수원을 돌다 보면 화성의 듬직함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주말은 경쟁이 치열하니, 사전예매 필수이다.
화성어차 예매하는 사이트: https://www.maketicket.co.kr/ticket/GD5843
"호위를 엄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변란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나의 깊은 뜻이 있다. 장차 내 뜻이 성취되는 날이 올 것이다. - 정조실록 5년(1791) 6월 5일 무신
정조가 자신만의 이상적 마을을 만들기 위해 세웠다는 화성. 화성은 기본적으로 마을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미도 크기 때문에, 수원을 둘러싼 화성 안에 살면 안전하게 살지도 모른다는 이유 모를 평안감을 들게 한다.
특히 어딜 가나 쉽게 보이는 성곽은 옛 마을터나 옛 조상들이 살았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옛날 그 당시 살아갔던 사람들을 상상하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오래된 역사가 아니라, 마치 지금 사는 사람들처럼 그때도 그냥 한 나라의 사람으로서 일상을 살았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면 이후 후손들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특별하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에, 진짜 지금 내 삶도 특별한 것처럼 느껴진다. 지나간 역사를 생각하면서 내 일상적 삶마저도 역사의 한 페이지일 테니 소중하게 느껴진달까.
화성행궁은 화성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중 하나이다. 화성행궁은 궁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서도 독특한 곳이었다. 화성이 있어서 그런가, 말을 놓는 곳이라든가 일반 병사들이 머무는 숙소라든가 이전에 보았던 경복궁, 창덕궁 등과 같이 왕들 중심으로 되어있는 한양의 큰 궁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화성행궁 안에는 스탬프 투어를 할 수 있도록 해두었는데, 스탬프를 찍어 돌아다니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스탬프도 힘이 센 친구가 찍으면 아래처럼 빈틈없이 찍힌다.
수원은 여행지가 한정적이다. 보통은 행궁동 쪽으로 와서, 위의 코스와 같이 화성, 화성행궁, 화성어차를 탄다. 그리고 그 주변에 위치한 행리단길, 통닭거리를 간다. 사실 그 코스면 수원 당일치기로 좋은 여행코스이다.
행궁을 구경하고,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수원 통닭거리에 갔다. 통닭거리에는 영화 '극한직업'에서 유명해진 왕갈비통닭도 있었다. 용성통닭, 진미통닭 등 유명한 곳이 있다지만 사실 맛은 거의 다 비슷하다. 그냥 들어가서 사람이 적은 곳에서 먹는 걸 추천한다.
치킨을 열심히 먹고, 행리단길로 향했다. ~리단길이라는 말은 인천에 살 때도 들어봤다. 인천에서도 유명한 길이 '평리단길'인데, 수원에 와보니 '행리단길'이 있었다. 행리단길은 한옥스러운 예스러운 느낌이 추가되어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행리단길 초행길부터 천천히 길을 걷다 보면, 요즘 유행하는 소품샵들이 아기자기하기 밀집되어 있다. 행리단길이야 말로 인스타감성 나는 가게들이 몰려있는 젊은이들 가득한 거리이다.
행리단길에서 각종 디저트와, 소품샵 구경을 마친 후에 다시 화성을 걸어 올라가보기로 했다. 날이 더웠는데도 불구하고, 선선하게 바람이 부는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자 위에 앉아서 친구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은 따뜻한 추억이다. (첨언하자면 여기는 맨발로 들어가야 하는데, 맨발로 들어가서 그런가, 손에 무좀이 옮아서 며칠 고생한 기억이 있다. 원래 추억도 양면성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선선한 바람을 충분히 느끼고 나서,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화성을 내려왔다. 성곽 사이에 스며드는지는 햇빛에 포근함마저 느껴졌다.
이 당시엔 서울에 살 때라 수원에서 서울까지 갈 길이 멀었다. 각기 흩어져 사는 친구들과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아래 사진은 수원에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다.
그리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밤 7시가 좀 넘는 시간이었지만 수원에서 서울로 가는 풍경은 꽤나 어두웠다.
그래, 밤은 원래 어두워야지. 어두운 밤을 억지로 밝혀 애꿎게 열심히 사는 서울사람들.
이땐 썼던 마지막 문장이 '수원에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말이었는데.
불과 몇 개월이 지난 후 수원에 정착해서, 수원 시민이 되어 이 글을 다시 쓴다.
사람 인생,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