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장 Apr 29. 2024

"압뽜! 압뽜!" (45)

출처 : 동화로 만나는 동요 ‘섬집 아기’ (hani.co.kr)



  육아휴직한 아빠가 되면서, '주 양육자'의 삶을 산 지도 이제 만 7개월이 넘었다. 엄마의 출산휴가 기간 동안에는 엄마와 육아를 분담했지만, 엄마가 출산휴가를 마치자마자 출근을 시작하면서부터 육아와 관련된 많은 부분이 아빠의 몫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주 양육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아빠는 '부' 양육자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무엇?



  엄마는 출근 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근심이 쌓여만 갔다. 아가가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 텐데, 혹여나 아가가 엄마를 잊어버리고 멀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보다 아빠가 더 걱정이 많았다. 아가가 엄마를 멀리하고 아빠만 찾게 되면, 가뜩이나 일하느라 힘든 엄마가 상심이 얼마나 클지...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가는 엄마의 출근길을 배웅할 때도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운다거나, 찡얼거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랑 단둘이 남겨졌을 때도 아가는 엄마의 빈자리를 신경 쓰지 않는 듯, 열심히 먹고 자고 싸고 놀며 하루를 보냈다. 엄마를 찾지 않는 아가의 모습 때문에 가끔씩 엄마가 서운함을 표현하곤 했지만, 사실 서운함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



  엄마가 나타나면 아빠는 투명 인간이 되었다. 엄마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후, 그리고 종일 집에 있는 주말이 되면 아가는 아빠를 멀리했다. 엄마가 아빠 품에 있던 아가에게 다가서면, 아가는 잽싸게 두 팔을 벌리며 엄마에게 가고자 발버둥을 쳤다. 반대로 아빠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가에게 다가서면? 아가는 잠시라도 엄마품을 뺏길세라 엄마의 가슴팍으로 파고들며 엄마의 옷자락을 세게 쥐고는 놓지 않으려 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아빠에게 "씨익" 미소를 날리는데...



  "음마! 음마!"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쉴 새 없이 뱉어대는 아가였지만, 좀처럼 "압빠"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내어놓지 않았다. 나름 엄마를 배려한답시고 '아빠'와 '엄마'라는 단어를 균형 있게 들려주려고 노력했는데, 아가는 아빠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하루 종일 '엄마' 노래를 부르면서도 '아빠'라는 단어는 가뭄에 콩 나듯 찔끔찔끔 흘려주었다. '요 작은 녀석이 아빠를 놀리는 것인가...'



  그런데 엄마가 여행을 떠난 이후 반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집을 비운 뒤 정확히 3일째 되던 날부터 아가가 연신 '압뽜!'를 외쳐대는 게 아닌가? 이따금씩 '아빠'라는 단어를 뱉은 적은 있었지만 두세 번을 연거푸, 그것도 연속해서 말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드디어 아빠의 노고를 인정해 주는 것이더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내심 기대가 컸다. '아가가 이렇게 '아빠'를 외쳐대는 것을 보니, '이제 주 양육자'로서 체면이 좀 서겠구나' 싶었다. 아가는 여행에서 돌아온 엄마 앞에서도 '압뽜!'를 거듭 외쳐대는 광경을 선보였고, 엄마도 처음 듣는 아가의 '아빠' 옹알이 소리에 적지 않은 기쁨과 충격을 느끼는 듯했다. 엄마가 며칠 동안 집을 비우면 아가가 엄마를 잊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있다던데, 우리 아가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가는 '압뽜!'라는 소리를 지르며 집안 구석구석을 기어 다녔고, '압뽜!'를 부르짖으며 배고픔을 외쳤다. 그리고 '압뽜!'를 부르며 아빠.... 아니, 엄마 품으로 향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압뽜'라는 단어가 '엄마'라는 단어의 최상급 표현으로 바뀐 것인가? 'good - better - best'처럼?



  엄마 품으로 도망쳐 간 아가는 지금도 고개를 획 돌려 아빠를 향해 미소를 날린다. 그럴 때면 아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빠! 엄마는 나랑 오래 떨어져 있어서 힘들어할 수도 있으니, 좀 배려해 주는 것으로 하자!'라고 말이다. 아빠도 그런 아가에게 미소로 화답할 수밖에! '그래 아가야! 그렇게 하자!' 


  '그런데... 아빠가 주 양육자... 맞기는 한 거지?...'





작가의 이전글 혼자서는 못해요... (4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