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비행과 여행

반나절 도보여행가

by 너일론

| 비행과 여행


조종사에게 비행 준비는 여행을 떠나는 설렘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사석에서 직업을 소개할 때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인데, 그 이유로는 으레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어서"가 꼽힌다. 고맙긴 하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고충이 따른다.


해외여행을 큰맘 먹고 떠난다면 몇 달 전부터 가야 할 곳, 먹을 것, 경험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치밀하게 준비하게 된다. 마지막 날까지 시간을 쪼개 체력을 완전히 소진한 여행자는 공항에서부터 뻗기 마련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비행기를 조종해야 하는 조종사에게 이런 식의 '불태우는' 계획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여행 단계 중 가장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언제였을까? 바로 돌아오는 날, 또는 돌아오기 하루 전이다. 동남아 비행을 가면 24시간의 짧은 휴식 후 곧바로 돌아와야 한다. 가는 날이 곧 돌아오기 전날인 셈이다. 이 때문에 호텔 방에서 휴식만 취하고 오는 분들이 많으며, 식사하러 나가는 정도로만 체류 기간을 보내는 경우도 흔하다.



| 반나절 도보여행가


물론 부지런한 분들은 반나절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유럽의 작은 도시들은 굳이 치밀한 계획 없이도 도보로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 충분한 여행이 된다. 부다페스트로 비행을 나갔다면 저녁 무렵 어부의 요새 인근을 거닐고, 체류 기간이 긴 마드리드에서는 큰맘 먹고 톨레도나 세고비아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식이다. 바르셀로나처럼 호텔 주변을 걸어 다니기만 해도 마음이 흡족해지는 도시라면 더할 나위 없다.


처음에는 구글맵을 켜도 곧잘 헤매게 된다. 하지만 적당히 시간을 들여 발품을 팔고 나면 어느 순간 도시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 공간이 지도 없이 도보로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된다. 길을 잃어버릴 걱정 없이 현지인처럼 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오롯이 만끽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 발자국을 세계의 도시에 새기며 다니고 있다.



| 취향을 찾는 여행


최근에는 확실한 개인의 취향에 맞는 곳을 찾아다니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는 필기구, 특히 연필을 좋아해서 도시마다 특색 있는 문구점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크다. 좋아하는 문구점으로는 부다페스트의 Fiok shop, 토론토의 Pen shoppe, 밴쿠버의 The Regional Assembly of text와 Paper-Ya, 후쿠오카의 마루젠 서점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내 취향에 맞는 곳은 바르셀로나의 Papereria Catalunya였다. 조르디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가 2대째 운영 중인 허름한 동네 문방구다. 한국에서 온 연필 수집가라고 소개했더니, 그다음부터는 스페인의 옛날 연필들(이베리아, 독일 쌍둥이 마크 연필 등)을 좋은 가격에 구해 주셨다. 아쉽게도 취항지가 바뀌어 몇 년간 못 가는 중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조르디 할아버지께 안부를 좀 전해주기 바란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