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구여행기 #5 보스턴, 미국

University Stationery Co.

by 너일론

미국 동부의 도시,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왔다.


보스턴에는 하버드와 MIT를 비롯해 수많은 대학교들이 있어 교육의 도시로 불린다. 문과계열의 세계 최고인 하버드 로스쿨과 이과계열의 최상위인 MIT가 2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애틀랜타 문구여행 이후 필드노트(FIELD NOTES)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마침 미국에 왔다. 보스턴에서 필드노트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image.png?type=w1 Field Notes 사의 공식 사이트의 판매점 정보


여정을 떠나기 전 필드노트 홈페이지에서 소매점 위치를 검색해 봤다. '이렇게 많으니 골라서 살 수 있겠네'하며 뿌듯하게 여행을 떠난다.


IMG_2968.JPG?type=w1 MIT Great Dome

MIT의 상징인 Great Dome에 먼저 가본다. 저 위에 뭔가를 올리는 장난(?)이 학교의 전통이다. Hack이라고 불리는 이 행위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유쾌함을 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하룻밤 새 크레인도 없이 자동차를 올려놓기도 했다는데, 문제 해결능력을 공학적으로 풀어 장난을 친다는 점이 참 MIT 답고 Nerd 답다. Hacking이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온 것인 듯싶다.


University Stationery Co.

296 Massachusetts Ave, Cambridge, MA 02139 미국


오늘의 문구점인 University Stationery Co. 는 MIT에서 하버드 방향으로 매사추세츠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나온다.


문구점 이름이 너무나 정직하고 직관적이어서, 우리말로 치면 '대학문구사'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정문 옆에는 커다란 연필이 붙어있어 이곳이 문구점임을 알려주고 있다. 노란 바탕에 녹색 글씨, 초록 줄무늬의 페룰과 분홍색 지우개의 조합은 보자마자 티콘데로가 연필을 떠올리게 한다. No.296은 주소지의 296번지를 뜻하는 것일 테다.


나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내부의 발매트가 증명해 준다. 노란 연필 옆으로 Welcome To 296이라고 적혀있다.


매트 옆으로 보이는 곳이 카운터다.


이곳은 아마도 부부인 듯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서 운영하고 계신다. 두 분 다 굉장히 친절하신데 나이가 꽤 많아 보이신다. 미국인의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70대는 되시는 것 같다. 에너지 넘치게 인사를 해주시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여쭤보시지만 '그냥 둘러보고 있어요'라는 말만 할 뿐이다. 언젠가는 유창하게 문구점 주인들을 인터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매대는 일반적인 문구점의 매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화려한 캐릭터 상품들이 많은 곳도 있지만 이곳의 매대는 소박하다. 나무로 제작한 매대에 별다른 DP 없이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이런 곳에 의외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안쪽에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을 유념해서 살펴본다.



연필코너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먼저 눈에 띄는 건 딕슨의 검빨 목수연필이다.


옆에 있는 노란 연필은 크레욜라의 연필이고, 분홍색 연필은 티콘데로가의 연필이다.




선반 안쪽에서 보물을 찾았다. UNIVERSITY라는 각인이 달린 연필이 가득 담긴 박스가 있다. Made In USA인 듯한데, 주황색에 가까운 노란색의 몸통에 짙은 분홍색의 지우개가 달려있다. 경도는 No.2.5이니 HB 정도 되겠지.


한참을 망설이다 내려놓았는데 지금 보니 한 타 정도는 사 와도 됐을 것 같아 아쉽다.


노트와 펜 종류도 꽤 많은 편이다. 문구점도 몇 가지 장르가 있는데 이곳은 팬시점보다는 문방구에 가깝다. 아마도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온 듯한 느낌이 난다. 나중에 한 번 더 찾아가게 되면 주인 할머니께 문구점의 역사에 대해 여쭤봐야겠다. 하버드와 MIT 출신의 유명한 사람들도 한 번은 이 문구점에 와서 노트를 사 갔을까?


아쉽게도 찾고 싶던 필드노트는 찾을 수 없었다. 약간의 연필들을 계산하면서 할아버지께 'FIELD NOTES'를 파는 곳을 여쭤봤더니 잠시 생각하시더니 길 건너편의 캠핑 전문점을 추천해 주셨다. 필드노트라는 브랜드가 아니고, 야외에서 쓸 만한 노트를 찾는 걸로 이해하신 것 같았다.


미국에만 오면 어디서나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필드노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다음 문구점에서는 찾을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