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기장 N, 하늘의 양치기죠
조종사라는 나의 직업을 소재로 쓴 이야기지만, 비행에 관한 기술서는 아니다.
21살부터 비행을 시작한 나는 어느덧 인생의 반 이상을 비행과 함께 했다. 비행을 하며 수많은 분들을 만나지만 가장 위험한 분들은 본인 스스로 비행에 자신 있다는 분들이다.
“비행은 늘 겸손해야 한다”
인생에서도 다 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위험하지 않던가.
스스로 비행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제넘게 비행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않겠다. 이 책은 비행기 속 ‘연결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서 찾은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비행은 늘 긴장 속에서 안전하게 수행되어야 하지만 그 틈새엔 인간적인 사유의 시간이 숨어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오토파일럿이 조용히 항로를 따라갈 때, 묘한 정적의 시간이 찾아온다. 태평양 상공을 날다 보면 몇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구간도 있다. 졸음을 쫓기 위해서라도 기장님과 대화를 하거나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그때 떠오르는 생각들과 감정들이 이 책의 재료가 되었다.
제목의 '사생활'은 사사로운 생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생활이기도 하다.
우리의 세계는 이제 늘 누군가, 혹은 어딘가와 연결된 ‘초연결의 세상‘이다.
화장실에서조차 사색의 기쁨을 박탈당한 우리는 연결되지 않은 시간의 소중함을 잃었다.
비행기에서의 쉬는 시간은 이 ‘연결되지 않은 시간’을 다시 만나는 기회다. 비행기에서 히트곡을 쓰기로 유명한 프로듀서가 있다. 끊임없이 방해할 집중력 도둑이 없기에 몰입이 가능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기내에서도 인터넷 연결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소중한 시간조차 돈을 주며 또다시 연결되는 것은 꽤나 아쉬운 결정이다.
야간비행 중 눈앞에 수직으로 우뚝 서 있는 은하수를 마주하거나 극지방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오로라를 만나면 누구나 수많은 공상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외로이 밤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짓던 양치기의 후예들이 아닌가.
자 이제 양 떼를 모는 대신 양떼구름을 헤치고 다니는 하늘의 양치기 얘기를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