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본업에는 도통 쓸 일이 없는 자격증을 두 개 갖고 있다. 독서지도사와 천문지도사 자격증이다. 이 중 천문지도사는 한국 아마추어 천문학회에서 몇 개월간 오프라인 강의를 듣고 시험을 봐야 딸 수 있는 자격증이다. 그만큼 밤하늘에 관심이 많았다.
지방에 살 때는 대포와 같은 위용의 10인치 돕소니언 천체망원경을 차에 싣고 별을 찾아다녔다. 수도권으로 이사오며 처분했는데 서울의 광공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야간비행 때 원 없이 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밤의 인천공항에서 이륙해 남쪽으로 비행하면 눈앞에 은하수가 우뚝 서 있다. 은하수는 강처럼 빛이 흐르는 곳도 아니고 그저 별이 우연히 많이 모여있는 곳도 아니다. 은하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 은하라는 거대한 별무리의 중심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생각은 곧 우주적 스케일로 확대된다. 순간 내가 조종하고 있는 것이 비행기가 아니라 우주선인가 착각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관계에 지칠 때면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우주적 시야에서는 나의 고민도 한낯 티끌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적도를 지날 무렵 남십자성이 지평선 위로 떠오른다. 북반구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별자리인데 왼쪽으로 살짝 굽어보는 모습이 퍽 인자해 보인다.
이번엔 동쪽으로 가 보자. 북미 대륙으로 비행하기 위해 알래스카 주변을 지나다 보면 오로라를 만나기도 한다.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 캐나다 등지로 오로라 헌팅을 떠나기도 하는데 의자에 편히 앉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하지만 오로라가 잘 보인다는 것은 우주 방사선을 많이 맞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니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하늘에서 보는 달도 땅에서 볼 때와 사뭇 다르다. 초승달을 땅에서 보면 밝은 부분만 보이지만 하늘에서는 어두운 부분도 잘 보인다. 반사광 때문인지 마치 방울빵처럼 보이는 것이다. 동쪽 바다 위에 뭔가 뾰족한 것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도 있다. 우주에 저렇게 각이 진 것이 있었나? 정체가 뭔지 고민하다 아랫부분까지 떠오르면 그제야 '아 반달이었구나' 하는 것이다.
가끔 수십 개의 반짝이는 물체가 일렬로 지나는 것도 본다. 영락없이 은하철도처럼 보이는 이것은 일론 머스크가 쏘아 올린 스타링크 위성들이다. 그의 위성을 통해 비행기 안에서도 빠른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대표적인 사색의 공간이었던 화장실에서조차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의 시대다. 이제는 연결된 시간보다 연결되지 않은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 온전한 사색이 보장되는 기내에선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폭발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경험을 한다. 마치 암흑물질과 우주먼지로 가득한 창조의 기둥에서 새로운 별이 태어나는 것처럼.
비행기에서도 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와도 나는 필경사 바틀비처럼 연결되지 않는 편을 선택하고 싶다. 그 편이 나를 나답게 지켜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