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비행의 인간관계론

by 너일론

| 블랙리스트


비행은 한 달 단위의 스케줄 근무다. 매 비행마다 파트너 기장님도 매번 바뀐다. 같은 기종을 타는 수많은 기장님이 있고, 또 수많은 부기장이 있기 때문에 누구와 매칭이 될지는 순전히 운의 영역이다. 다음 달 스케줄이 나오면 먼저 어디 가는지를 보고, 그다음은 같이 가는 기장님이 누군지 확인하게 된다. 사람 사는 거 별반 다르지 않다. 어딜 가나 사람 때문에 힘들고 사람 덕분에 즐겁다.


흔히 얘기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부기장 사이에서는 기장님들의 명단이, 기장님들 사이에서는 부기장의 명단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연히 본 적도 있는데 ‘이 분이 블랙리스트라고?’ 싶은 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명단에 오르는 영예를 얻은 기장님과 비행을 했는데 오히려 얘기가 너무 잘 통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반대로 좋은 기장님이라고 했지만 대화가 계속 어긋나는 분들도 있었다. 그 후로는 남이 만든 리스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나와 결이 맞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다 싫다는 기장님도 나와 맞으면 그만이고, 다 좋다는 기장님도 나와 맞지 않으면 아닌 거니까.



| 프로젝트성 근무시스템


처음에는 매번 파트너가 바뀌는 시스템이 쉽지 않았다. 내향인으로써 매번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1:1로 만난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은 시스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향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자리는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왁자지껄한 자리다. 반면 조종석은 소수와의 인간관계를 깊이 맺을 수 있는 자리였다.


처음 만나는 기장님과의 대화는 간략한 자기소개부터 시작된다.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소개는 보통 비행 경력에 관한 파트와 가족 사항에 관한 파트로 이루어진다. 어디서 비행을 시작했고, 무슨 무슨 비행기를 타 왔는지가 앞부분, 사는 곳은 어디고 가족관계는 어떻다는 이야기가 뒷부분을 담당한다. 거기서부터 공통의 화제를 찾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대화가 잘 이어지다 보면 도착공항에서의 계획도 공유하게 되고 자연스레 식사를 함께 하거나 근교여행을 같이 하기도 한다.


며칠간 프로젝트성으로 함께 일하고 귀국하면 입국장에서 바로 인사하고 헤어진다. 그 후엔 스케줄에 따라 몇 년간 다시 못 보기도 한다. 남들이 보면 참 재미있는 근무 시스템이라고 할 것이다.



|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것


긴 시간 동안 대화를 하다 보면 좋은 점도 많지만 인간적으로 아쉬운 점도 보인다. 장점이 보이면 내 것으로 삼으려 노력하면 되고, 아쉬운 점도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새로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것이라고도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권의 책에 비유하기도 한다. 비행이 끝나면 한 권의 책을 완독 하는 느낌이 든다. 배울 것은 취하고, 배우지 않을 것은 버린다. 그렇게 내 우주는 한 층 더 넓어진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