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집에 없는 시간이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가뜩이나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 탓에 참 많은 생각을 하였다. 애간장도 많이 탔고 그만큼 눈물도 많이 흘렸다. 작지만 너무도 큰 변화도 생겼고 썩 내키진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일을 하는 날을 제외하곤 쉬는 날 중 적어도 하루는 집에만 있게 된다.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한다. 단순한 노동으로 보내는 시간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쉴 틈 없이 형태가 바뀌어가는 재활용 박스를 들곤 1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모습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오늘 꿈엔 엄마가 나왔다. 아침 7시 27분에 잠시 눈을 뜨자마자 전화를 걸어 8분간의 통화를 하고 창밖을 보니 안개가 짙게 깔려있었다. 밤 새 눈이 조금 온 모양이다. 쌓이진 않았지만 차라리 잘 된 거라 생각했다. 가볍게 흩날리는 눈처럼 마음도 그리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해가 질 즈음엔 한파주의보에 눈까지 많이 내렸다. 차가운 공기와 내리는 하얀 눈을 보니 이젠 정말 겨울이구나 싶었다. 너무 추운데 그래서 참 따뜻한 이상한 계절이다. 이젠 서른이 정말 머지않았다. 서른을 다른 말로 “이립(而立)”이라 부르는데 ‘말 이을 이(而)’ 와 ‘설 립(立)’을 합한 말로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의미를 곱씹어 생각해 보니 자의로 봉사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이 각지고 바운더리가 강한 나라서 내 주변 사람들은 그 각진 변에 기대거나 누울 때도 있지만 모서리에 자주 베이고는 하였다. 둥글게 살고 싶지만 좀처럼 쉽지 않고 실제로도 동그라미 모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난 참 네모난 사람이다. 정해진 선을 넘는다면 정말 끝이기에 미련 없이 뒤돌 수 있는 성격은 어쩌면 확실한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선행을 베푸는 게 곧 내 추운 몸을 따뜻이 녹여준다는 걸 난 알긴 하는 걸까. 도덕 위에 서 있는 난 다리가 하나뿐이다. 날이 풀리기 전에 연탄을 날라야겠다.
자연스레 올해가 가고 내년이 오는 것처럼 버릴 건 버리고 헤어질 건 헤어지게 두면 새로운 내가 찾아올 걸 안다. 이기적인 나를 조금은 버리고 타인의 눈을 바라보면 그 눈동자에 비친 시선은 정작 반대로 나라는 걸. 잔잔한 재즈와 캐럴처럼 따뜻한 연말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