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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Nov 19. 2023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시간을 되돌려 정말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If Only(2004, 로맨스)'라는 영화가 있다. 슬픈 내용이라 해서 휴지까지 준비해 놓고 봤던 기억이 난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남자가 자꾸 여자를 잃기 전으로 돌아가는 내용이다. 남자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어쨌거나 여자는 계속 죽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나비효과(2004, 드라마)'라는 영화의 주인공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간다. 자기가 노력하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뭔가를 바꾸면 바꿀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과거로 돌아가', '불행한 재를 바꾸려는' 영화나 드라마, 만화는 찾아보면 많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한 어떤 주인공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나도 당연히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무엇을 놓친 걸까, 내가 어떻게 했어야 되었을까.


처음부터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지, 다시 사귄 게 잘못된 건지, 결혼 후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업무과중을 피하기 위해 당신이 직을 한 게 문제였던 건지,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그런 생각했다. 다시 그날 그때로 돌아가 여보, 제발 오늘은 나가지 마, 하고 당신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어느 날 밤도 잠이 오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반복해서 틀어놓고 있었다. 나지막하고 조곤조곤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미국 인디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거침없이 하이킥' 165회 중)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나는 고민을 하다가 며칠 밤을 새울 것이다. 내가 과거로 다시 돌아간대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음을 확신한다. 만일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었다고 해도 결국엔 당신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형태를 가진 것은 언젠가 변하거나 사라지고, 사람은 반드시 한 번은 죽으니까. 만일 타임머신이 생겨 당신에게 돌아간다고 하면, 나는 아주 짧은 순간 당신을 되찾은 기쁨을 누리고 다시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잃은 고통을 삼키며 살아갈 것이다. 이제 겨우 삼 년을 버텼는데, 또다시 그 지난한 시간을 견디며 살아갈 일이 가혹해서 나는 결국 타임머신을 타진 않을 것이다. 당신은 나를 원망할까.


아니 애초에, 당신이 죽는 걸 알았더라도  당신과 결혼했을까.


철학가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론 중엔 '영원회귀'라는 것이 있다. "세계의 모든 사건들은 일련의 순환을 통해 동일한 순서로 영원히 반복된다"는 이론이다. 나는 니체의 책을 읽은 적도, 그의 사상을 깊게 공부한 적도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영원회귀라는 것이 일종의 운명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는 인디언 속담처럼, 모든 사건은 어차피 그렇게 진행되게 되어있으므로 두려워 말고 삶을 직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어쨌거나 당신과 결혼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내 짧은 생애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의 아름다운 순간들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 모든 순간들을 낱낱이 사랑했고, 내가 사랑한 그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했다. 나는 당신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여 만들어진 지금의 내가 좋다. 물론 가끔 한심하고 때때로 나약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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