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대처하는 태도에 대하여
각자의 인생마다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나에게 남은 고통의 양은 제법 적어져 있을 텐데
그렇게 믿고 싶으나 여전히 삶은 매 순간이 고난과 역경이고, 그때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그 날카로움에 베여 무너져 내린다.
남편의 죽음을 겪은 후, 그게 너무 아파서 그보다 더 아픈 일은 없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는 왜 크고 작은 모든 고난이 그리 똑같이 아플까.
어쩌면 고통은 모두 제각기 다른 형태와 색깔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같은 크기여도 뭉툭한 고통이 있고 뾰족한 고통이 있어, 뭉툭한 건 뭉툭한 대로 묵직하게 아프고 뾰족한 건 뾰족한 대로 날카롭게 아프다.
오늘은 유난히 우울했다. 주말에 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기 기운이 있던 아이가 새벽에 코가 막혀 짜증을 내며 몸부림을 쳤고 기침이 멎지 않아 괴로워했다. 그 전전날부터 잠을 못 잔 나도 몹시 괴로웠으나, 아픈 아이가 더 안쓰러운 걸 보니 못나도 엄만 엄마인지 아니면 덜 되었어도 인간은 인간인 건지. 새벽 한 시 기침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아이에게 꿀물이라도 줄까 해서 부엌으로 나섰다. 오늘 새벽도 잠자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내가 부엌으로 나서는 기척에 아이가 나를 쫓아 나오며 서럽게 운다. 엄마 왜 맨날 나 두고 나가..
아무리 다 컸다고 느껴도, 이따금 어른스러운 소리를 해도 너는 아직 한참이나 내 아기구나. 나는 아이에게 꿀물을 먹이며 달래었다. 안겨오는 아기의 뜨근한 체온이 나를 현실로 감아 내렸다. 그것은 외롭고 서늘하지만 무겁고 정확했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차가운 아침이 왔다. 출근도 싫긴 싫었는데 일이 마구 밀려왔다. 나만 바쁜 것 같았다. 사소한 것들이 짜증스럽게 느껴졌고 그런 것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작고 무기력해서 화가 났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인정은 받고 싶다.
누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면 좋겠는데 만만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작은 고난에도 징징대고 허둥대면서도, 의연하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한가득이다.
이번 생엔 그른 게 아닐까.
이미 내가 손쓸 수 없이 만만하고 한심한 사람이 된 건 아닐까. 작은 실수들이 나를 구덩이로 몰아넣는다. 무심코 스스로를 탓하는 말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된다. 그 뒤로 밀려오는 우울감이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안돼... 나는 그럴 때,
당신의 오래된 말들을 떠올려.
- 여보는 대단해.
- 여보는 다 잘해.
- 너는 최고야.
-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어.
그 말들은 낡았지만 여전히 힘이 있었다. 당신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데도 그 말들은 내 안 어딘가에 아주 깊숙이 새겨져 있다.
아마 정말로 나는 대단하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정말 잠깐 무너지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강한 사람일 것이다.
오늘은 웅크리고
내일은 일어나야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있는 힘껏 아이를 끌어안고,
아이의 귓가에 그의 말들을 불어넣는다.
그것은 또한 내 하루를 시작하는 주문이 된다.
내 보물, 내 보석.
너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어.
너는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