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리다 Jan 07. 2024

행복한 엄마가 될 거야

세상의 모든 아기오리들에게,

우리 엄마의 결혼생활은 대체적으로 고단했다. 맏며느리도 아니었는데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근방에 살던 시누 세 명이 매주 번갈아 시조카들을 데리고 놀러 왔다. '밤나무 등걸에 난 회초리와 같이 무서운 시아버님, 볕을 쬔 쇠똥같이 말라빠진 시어머님, 삼 년이나 걸려서 엮은 망태기에 새 송곳부리같이 뾰족하신 시'이었다.(*작자미상 사설시조 일부 인용)

해마다 시댁 조상이 돌아간 날기억해 뒀다가 상다리 부러질듯한 제사상을 차는 일이며 명절 차례상을 차리는 일 등을 해내야 했다.

고단했다. 

시집올 때 가져온 금붙이는 자식들 급식비를 내기 위해 팔았다. 일 년에 겨우 두 번 정도 만날 수 있었던 친정 언니들은 동생에게 아끼는 장신구를 주는 대신 차라리 생활비를 보태주었다. 동생이 그걸 끼고 다니는 게 아니라 팔아서 살림 보탠다는 걸 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난이 물밀듯이 들어와 빠져나갈 틈이 없는 삶이었다. 분명 그 어딘가에 사랑도 있었을 테지만 늘 비좁아 몸을 부대끼면서도 추웠다.


내가 봤을 때 엄마의 혼생활은 행복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도 나는 결혼을 했다. 한번 행복한 엄마가 되어보고 싶었다. 나에겐 그 사람이 있었으므로 어쩐지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의 불행은 그런 오만함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걸까.


불현듯 몰아친 남편의 죽음이 나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것은, 그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사람이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있으면 나도 무조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이 없자 투자를 많이 한 사업이 망해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꽤 멋졌는데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한동안 매일 술을 마셨다. 많이 마셨다. 그러다 어느 날 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고, 그때에서야 비로소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무너진 삶을 일으켜야 했다. 나는 되게 넘어지고도  일어났다. 강하진 않았어도 끈덕지게 살았다. 내 삶의 형태가 그런 식이었으므로  나는 이번에도 내 스스로를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못했다.


우선은, 매일 한 시간씩 걷기로 했다. 당신과 자주 다니던 산책로였다. 당신이 있었는데 없어진 공간들을 마주칠 때마다 울음이 터졌다. 코로나로 인해 상용화된 마스크가 내 울음을 감춰 주어서 나는 부끄러움 없이 울었다.


그렇게 면서 걷던  위로 어김없이 봄이 찾아들었다. 버드나무 가지가 길게 늘어진 강변에 아기오리 아홉 마리가 태어났다. 그마한 생명체 아홉 마리가 물결을 따라 졸졸 어미오리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막한 주둥아리로 이제 막 솜털 같이 자라기 시작한 날개깃을 부비는 아기오리들은 몸짓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웠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불가항력으로 멈추어 카메라를 들었다.

아. 세상에 어린것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어린것들이 어미를 좇아 세상을 배우는 모습이 뭉클다. 도 내 어린것을 힘껏 가르쳐야지. 산수와 국어는 물론이고 살아내는 법을, 절망을 견뎌내는 법을 르쳐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내 어린것이 절망을 맞닥뜨렸을 때, 그건 이렇게 극복하는 것이라고, 그 순간을 극복해 내면 살 수 있고 살아서 다행인 순간들이 또 온다고

잘 가르쳐주고 싶었다.


살아있으면서 불행을 피할 순 없지만

살다 보면 행복한 일들도 참 많다고.

나는 행복한 엄마가 되어 행복한 아기를 키우고 싶어서 행복해지기로 했다.

이전 04화 내 사랑 아기 고슴도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