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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Dec 31. 2023

내 사랑 아기 고슴도치

사실은 팔불출입니다

태어난 지 한 달여 만에 아빠를 잃은 내 아이는, 정신머리 없을 애엄마를 지탱해 줄 겸 찾아온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코로나로 한창 예민하던 시절임에도 나는 이미 코로나 따위보다 더 무서운 걸 겪고 있었다. 그래도 오십일도 안된 아기를 장례식장에 데려갈 수는 없어 집에서 친구들이 돌봐주고 있었는데 발인하던 날 아침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기가 울음을 통 안 그친다 했다. 나는 그때, 수의를 덮은 남편의 관을 막 떠나보내고 기진맥진해 주저앉아 있었다. 눈물과 절망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니 정신을 추슬러 당장에 아기에게 달려갔다. 아기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고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실신할까 걱정된 남편이 아기의 발뒤꿈치라도 꼬집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아기가 천리안의 효자라 엄마를 위한답시고 끈덕진 울음으로 나를 불러낸 것이든가.


낳아놨을 땐 불타는 고구마거나 퉁퉁 분 아기부처상 같던 생김새가 시간이 지나자 미끈해져서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맑은 갈색눈동자, 동그란 눈매, 둥근 이마와 오똑한 , 앵두 같은 입술이 흡사 귀공자 같아졌다. 객관적으로도 귀여웠다. 정말로.


오십일도 안되어 사람들 손을 많이 탄 아기는 낯가림도 거의 없어서 낯선 사람을 보고도 잘 웃었다.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제법 사교적인 성격이라 어린이집 적응도 수월했다. 일단 적응기간을 거치자 아이는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우는 법이 없었다. 규모가 있는 편인 어린이집이어서 선생님들 수도 꽤 되었는데 말문이 트자 이 선생님 저 선생님 이름까지 외우며 쫓아가 안겨들었다.

기저귀도 배변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이레 만에 떼었다. 말 트임도 빨랐다. 담임선생님은 이 아이의 육아난도 최하라 거듭 치켜세워 주다. 남자애치곤 얌전히 앉아 노는 블록 쌓기 같은 것이나 책 읽기를 좋아했고, 말귀를 잘 알아들어 규칙도 잘 지키는 편이랬다. 마냥 순둥이인가 했더니 제 물건 뺏기는 것을 지 않을 만큼 야무졌고 눈치가 재빠르며 사람을 잘 따르니 예뻤다.

비록 세상에 나자마자 어머니 기체후일향만강하시옵니까, 하며 탯줄 돌돌 감으며 나오지는 못했어도, 생애주기 그 나이에 할법한 것들을 적기에 깨우치니 이미 충분히 효자였다.

상대적으로 아들들은 공감능력이 안 좋다던데 이 애는 공감능력도 좋았다. 내가 울적해 보이면 왜 그런지 꼭 관심 있게 묻고 나를 안아 토닥였다. 내가 어딘가에 부딪쳐 다치기라도 하면 나랑 부딪친 물건을 혼내주었다. 식탁 밑에 뭐가 떨어져 주울라치면 엄마가 머리를 부딪칠까 봐 조막만 한 손으로 식탁 모서리를 막아주었다. 가끔은 내 얼굴을 양손으로 감아쥐고는 '너모 예쁜 거 아니야?' 했다. 아이를 꼬옥 끌어안고서 엄마가 너를 더 사랑한다고 말하면, 자기가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한다며 받아쳤고 '엄마가 오해하고 화내서 미안해 엄마가 나쁜 엄마네' 하고 자책하면 '아냐 안나빠 엄마가 바뻐서 그런 거지' 하고 말해주었다.

내리사랑이며 모성애가 조건 없는 사랑이라던데, 나를 향한 아기의 무한한 사랑이야말로 조건이 없었다.

생전 처음 하는 육아를 혼자 감당하기가 버거워 지치고 화가 나다가도 아이의 넘치는 사랑 앞에 겸허해졌다.


물론 육아는 각오 이상으로 어려웠고, 아기는 아기답게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손이 많이 갔다. 나는 조급한데 애는 늘 여유가 넘쳐 워킹맘의 아침은 늘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존재가 내 빈곤한 마음을 매일 따뜻하채워갔다.


새삼 내가 아를 지켜주고 있던 것이 아니라 아가 나를 지키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시간이 약이란 말도, 아기를 보며 살라는 말도 와닿지 않아 듣기 싫었는데 결국 내게 살아갈 힘을 준 것도 시간과 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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