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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Dec 24. 2023

모성애가 대체 뭔데

이런 엄마도 있는 거야

나는 아이를 엄청 예뻐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길 가다가 퐁실퐁실하고 젖내 나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귀엽기는 하였지만 그 본능은 그저 어린 생명체를 보호하여 종족보존을 꾀하는 정도의 동물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도의 측은지심이나 동정심 같은 것은 있었어도 특별히 자기희생적이거나 이타적인 면모는 없는 편이었기에 막상 아기를 낳고 나니 막막했다.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하는 아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했다. 쉽고 편하게 키우고 싶었다. 그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 처음으로 산 육아서적은 '똑똑하고 게으르게' 육아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런데 책 속 육아와 현실 육아는 달랐다. 마음가짐의 차이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뭘 생산했는데 그게 사람이었다. 나는 알을 낳고도 내 새끼인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는 닭의 심정을 느꼈다. 알이 굴러가니 깨지지 않게 잡긴 해야겠는데 일단 잡고 나면 어째야 할 줄을 몰랐다.


자연분만으로 갓 태어난 아기는 머리 모양이 외계인처럼 물방울 모양이었고 부기가 아직 빠지지 않아 이목구비가 밋밋했다. 초점도 맞지 않아 사시였는 데다가 황달기가 있어 흰자에 노란빛도 돌아 솔직히 좀 못생겼는데 내가 낳아놓은 애라 그런가 그냥저냥 봐줄 만했다. 콩깍지가 쓰이려 그랬는지 이 하나 없는 주제에 제법 작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남편은 '작고 소중하다'며 그 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객관적으로 예쁘다'며 아들바보를 자처했다.


남편은 나보다는 훨씬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똥기저귀는 엄마가 전담하라고 농담한 것치고는 애를 대하는 자세가 사뭇 진지했다. 격리되다시피 했던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나와 조리원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남편은 처음으로 제대로 아기를 안았다. 그리고 조리원 입구에서 쫓겨났다. 원래는 남편도 같이 지낼 수 있었으나 한참 코로나로 민감한 시절이어서 아기와 엄마만이 조리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막 제 새끼 냄새를 맡아보며 신이 났던 남편은 풀이 죽어 돌아갔다.

남편은 그날 나와 아기가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다. 남편과, 나, 아기 셋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갔는데 갑자기 아기가 없어졌단다. 우리는 한참 동안 아기를 찾아 헤맸고, 마침내 아기를 찾았을 때 아기가 난간이 없는 계단 위에 서 있었다. 아빠를 발견한 아기가 발을 헛디뎌 계단 위에서 떨어졌는데, 다행히 다치진 않았지만 남편은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이성적이고 침착한 남편이 꿈속에서 아이가 위험에 처한 걸 보고 울었다니, 나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남편의 부성이 귀여웠다.


조리원에서 나는 아이와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기보단 신생아실에 아이를 맡기고 몸을 회복하는 것에 집중했다. 나름대로는 모성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 약간의 전투준비를 한 것이었다. 조리원을 떠나면 앞으로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내가 애를 돌봐야 할 테니 내 약해진 몸을 최대한 보듬어 놔야 했다. 아기가 딸꾹질을 하거나 밥 먹고 트림을 하지 않거나, 기저귀에 뭔가를 쌀 때에도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 일단 신생아실로 애를 데려갔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애가 참 순한 애라고 생각했다. 같이 있는 시간이 짧아 우는 것을 못 본 것이다. 그런데 신생아실 돌봄 선생님은, 이 아기는 가능하면 울리면 안 되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애가 얼굴이 파랗게 질리도록 울더라, 하면서. 의아함은 조리원에서 나오는 즉시 해소되었다.


신생아는 계속 울었고 끄떡만 하면 토를 했다. 잠도 없었다.

어느 날은 우는 갓난아이에게 짜증을 냈다가 남편한테 혼이 났다. 아기는 원래 울어, 엄마가 짜증을 내면 아기가 불안해해. 정작 나는 혼나 놓고 빠르게 뉘우쳐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은 내심 마음에 걸렸던지 아기의 수유량을 체크하기 위해 펼쳐놓은 공책 한편에 편지를 남기고 출근했다.

<여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기가 내 뜻같이 행동하지도 않고, 왜 우는지 모르겠으니 힘들지? 진짜 100일까지만 힘내보자! 쉴 수 있을 땐 전투적으로 쉬고! 다들 힘든 시기라잖아. 좀만 힘내자>

남편은 잠시나마 정말 좋은 아빠였고 부족함 없는 반려자였다.


그는 아기가 100일을 지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 날, 나는 아기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누군가 한달음에 달려와 아기를 받아 안아준 이후로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고만 싶었다. 발밑이 지옥 끝까지 무너졌다. 남편이 없이는 살 수가 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강하니까 힘내라는 위로가 고통스러웠다. 나는 엄마인데도 왜 강하지 못한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 엄마였으나, 그래도 아기가 울면 기계적으로 아기를 안았다. 아기를 안아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거나 재울 때 이따금 꿈결처럼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여보는 다 잘해, 여보는 잘하고 있어, 여보는 정말 좋은 엄마야.


그땐 모성애가 아니라 오직 그것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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