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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Dec 10. 2023

아기를 낳을 각오

허황된 꿈을 꾸었다

나는 무난한 딸이었다. 우리 엄마 말에 따르면 순하고 말귀 잘 알아듣는 아이였다. 이해력도 집중력도 좋아서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곧잘 해냈는 데다가 아무한테나 싱글 생글 잘 웃는 순둥이였단다. 말랑 콩떡 한 아기의 귀여움을 못 참은 아빠가 발뒤꿈치를 세게 깨물어도 그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울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울음을 삼키는 아기였댔다. 부모님은 나를 키우면서 원래 애 키우는 일이 이 정도만 어려운가 보다, 한번 축구단을 만들어 볼까 하고 둘째를 낳았다가 호되게 당하셨다. 말 못 하는 아기가 요구사항이 통하지 않으면 어디까지 우는지를 알게 되셨다. 과연 내가 육아난도가 낮은 편이긴 했나 보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자라서, 부모님이 나를 참 쉽게 키운 줄 알았는데 내 새끼를 키워보니 그게 웃기는 소리였다. 애가 잘 웃고 젓가락질이며 한글 따위를 금세 습득하는 정도로는 절대 육아를 쉽다고 할 수 없었다. 육아하기 쉬운 아기란, 배 속을 기어 나오면서 어이쿠 어머님, 기체후일향만강하시옵니까 소자를 낳는 것이 수월치 않았지요 이제부터 염려 놓으십시오, 정도는 말하고 탯줄 돌돌감아 정리하면서 나와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쉽게 육아를 하겠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이미 마음가짐이 글러먹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하나의 우주를 만드는 일이라던데 그렇게 신성한 걸 하고자 하면서 사명감이나 각오 따윈 없었다.


그저 우리가 결혼한 성인이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아이 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 적당한 시기에 낳기로 한 것뿐이다.


무엇보다도 남편이 든든했다.


그 사람이라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 의심치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아빠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에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거기에 내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계산은 없었다. 내가 남편에게 좋은 사람이고자 해서 노력하는 정도면 아이에게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생각이 전부였다.


어쨌든 아이를 낳기로 한 결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나와 남편이 아빠, 엄마, 아이로 이루어진 가정을 갖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육아에 대한 불확실한 청사진 속에서 그나마 믿었던 건 내 책임감과 남편의 성실함 정도였다. 내가 순한 아이였고 남편이 착한 사람이니 아이도 그 중간쯤 어딘가겠지 했다.


남편은 한번 말하면 거의 두 번 말하게 하는 법이 없었다. 이른바 인풋(input) 아웃풋(output)이 잘 되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우리 아이도 그럴 것이라 기대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벌써부터 어른의 수준을 바란 것이다.​

그래도 내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꼭 해주기로 결심한 것이 하나 있긴 했다. 그게 나름 각오라면 각오였는데, 나는 아이가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다정다감하고 세심하고 착한 남편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나는 거기에 숟가락만 얹어놓을 심산이었다.


심보가 그 모양이라 그랬나.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당신을 잃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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