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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Dec 17. 2023

엄마가 좀 되어 볼랬더니

천사야. 내 천사들아.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이 이직에 성공한 뒤 우리의 삶에 가장 안정적인 시기가 찾아왔다. 경제적으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무언가가 차곡차곡 삶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던 시점이었다. 우리는 드디어 첫 아이를 계획했다.

계획하자마자 아이가 생겼다. 나는 4주 차에 그걸 알게 되어 신나게 병원에 갔다. 테스트기는 분명 두줄이 나왔는데 아기집은 아직이라고 했다. 5주 차에 아기집을 보았다. 심장이 뛰는 걸 보려면 아직 더 있어야 한단다. 그렇게 6주 차에 병원에 갔을 때, 아기집은 비어있었다. 드라마 같은 데서 임신부가 초음파 화면 속 깜빡이는 아 심장동을 보며 훌쩍이는 장면을 올리고 있던 나는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로 7주 차에 수술을 했다.

수술은 금방 끝났지만 생전 처음 수술대에 올랐던 나는 오슬한 추위를 느끼고 몸을 옹송그리며 상실감과 패배감에 찔끔찔끔 울었다. 몸인지 마음인지 둘 다인지가 분명하게 아팠다.

유산도 출산과 같이 조리를 해야 한다던데 그걸 실감하지 못했던 젊은 나는 마음을 달랜답시고 영화관에 갔다. 초여름이어서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한동안 손가락 마디와 무릎이 욱신거렸다. 아기가 내 몸에 있었던 것은 짧았는데 나는 한참 동안 그 존재를 되새겨야 했다.

의사 선생님이 권고한 3개월이 지나자마자 우리는 또 아이를 계획했다. 바로 아이가 들어섰다. 경험에 따라 5주 차에 병원에 가 아기집을 보았고 걸음걸음 조심하여 6주 차를 지났다. 아기의 심장이 미약하게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미약했다. 아기의 태명을 감자에서 튼튼이로 바꾸자 아기의 심장이 조금 더 팔딱거리긴 했다. 11주 차에 아기 심장이 멈춘 것을 알았다. 나는 정말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난임검사는 세 번째 유산부터 지원금이 나왔지만 우리는 바로 검사를 했다. 원인을 알면 해결방안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근데 원인이 없었다. 우리 둘 다 정상이었다.

한 해에 두 번이나 유산을 했으므로 좀 더 느긋해야 했을지도 몰랐으나 나는 이십 대가 아니었으므로 자연히 조급해졌다. 반년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우린 또 한 번 아이를 계획했다.

두 줄을 확인하고 병원을 예약한 날이 되었는데, 피 비침이 예사롭지 않아 불안했다. 병원에 가던 길에 아이가 없어지는 중인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는 길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화유였다.(*화학적 유산: 임신테스트기 양성반응은 나오지만 아기집은 보이지 않는 상황)

의사 선생님은 내게 화유는 유산도 아니라고 했다. 임신을 안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1년 정도의 시간을 갖고 아이를 준비하기를 권유했다. 나는 그 권유가 너는 지금 세 번째 유산을 한 여자라는 소리로만 들렸다.


임신을 유지하긴 어려웠는데, 임신 하긴 쉬웠다. 우리에게 또다시 아이가 찾아왔다.

두 번의 유산과 한 번의 화유 끝에 한 임신은 드디어 순조로웠다. 유산 경험이 있으니 안정기까지도 마음이 불안하긴 하였으나 불안이 무색하게 태아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났다. 입덧이 가라앉을 즈음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나는 남들이 흔히 하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서 미치겠는' 경험도 없이 출산일을 맞았다.


심지어 출산도 무난했다.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정기검진 날 아침 임산부 요가를 하다가 배 한쪽에서 파직 찢어지는 느낌이 나며 양수가 터졌다. 나는 와중에 머리까지 감고 병원에 가는 여유로움을 선보였다. 무지해서 용감했다. 자궁문이 4cm나 열려 있었고  고민 없이 무통주사와 유도분만 촉진제를  맞았다. 가족분만실에서 클래식을 틀어놓고 남편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진통을 기다렸고 한두 시간 만에 아기를 낳았다. 순산이었다.

그런데 일반병실로 이동 후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몸을 일으킬 때마다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내 증상을 들은 담당 선생님은 무래도 통주사를 맞으면서 뇌척수액이 샌 것 같다고 했다. 결국 하루 더 입원하여 후처치로 블러디패치라는 시술을 받아야 했. 무통주사를 잘못 맞은 탓인지 마취가 보통보다 오래 지속된 바람에 악 소리 나는 진통은 체감 한 시간 정도였으니 전화위복이랄지 새옹지마랄지 아무튼 그랬다.

어쨌거나 나는 정기검진일에 양수가 터져 무통주사까지 맞고 짧은 진통 후 자연분만으로 애를 낳았다. 물론 낳을 땐 애는 대체 언제 나오냐고 물어볼 만큼 죽도록  아팠고 힘을 주느라 흰자위에 실핏줄도 터졌다. 뇌척수액이 샜다니, 쓰다 보니 남의 일처럼 썼지만 말만 들어도 무섭다. 그래도 남들에 비하면 비교적 나쁘지 않은 출산이었다.

남편이 아이의 탯줄을 잘랐다. 남편은 정말 행복해 보였고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아이의 탄생 직후 남편과 나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신뢰와 결속력이 충만했다. 너랑 내가 힘을 합쳐 뭔가를 만들었는데 그게 아이였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걸 함께 해낸 경험이 우리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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