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리다 Feb 04. 2024

엄마가 없어지는 이야기

아이에게 제일 무서웠던 것은

아이가 곰인형을 벽에다 치며 놀았다.

그렇게 하면 곰돌이가 아프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고 하니, 곰돌이가 좋아서 그런 거예요, 한다.

평소엔 내가 별생각 없이 인형을 베고 누우면, 인형이 아프다며 빼앗아갈 만큼 공감능력이 좋고, 주로 얌전한 놀이를 즐기는 아이라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그런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인형을 때리거나 던지는 장난을 할 때마다 내심 신경이 쓰이던 차였다. 좀 전엔 온몸으로 부대끼며 나를 발로 툭툭 차기에 절대 사람을 때리거나 아프게 하면 안 된다 하자 그것도 좋아서 그런다고 하며 짓궂게 굴었다.


-좋으면 소중히 대해주어야 하는 거야. 아프게 하면 안 되고.


남자아이라 개구진 건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폭력적인 행위 자체에 재미를 들리면 안 된다는 판단 하에 훈육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오늘은 민이가 엄마를 괴롭혀서 엄마가 없어지는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아이는 내가 밤마다 자기 직전 들려주는 얼토당토않은 동화들을 좋아했다. 그걸 이용해 살짝 충격요법을 쓰기로 한다.


아홉 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워 아이의 몸을 끌어당겨 안았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아이 등을 토닥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옛날에 민이와 엄마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민이가 엄마를 자꾸 때리고 괴롭히는 바람에 엄마가 점점 작고 투명해지더니 어느 날 결국 없어지고 말았어.


(왠지 아이가 코를 훌쩍인다. 겨울 초입부터 한 달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약을 달고 살았는데, 또다시 감기가 오려나 살짝 걱정이 되었다.)


-민이는 없어진 엄마를 찾기 위해 남쪽 마녀를 찾아가기로 했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다 다다른 숲에는 레고로 만든 큰 성이 있었어.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지. 민이가 조심스럽게 문을 밀자, 문이 소리 없이 열렸어. 성 안에는 긴 복도가 있었고 커다란 방문은 모두 닫혀 있었어.


민이는 첫 번째 방문을 열었어. '엄마 여기에 있어요?' 하지만 첫 번째 방 안에 엄마는 없었지. 방문 뒤로는 너른 목초지가 있었고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어. 까만 머리 마녀가 젖소 앞에 앉아 우유를 짜고 있는 중이었지. '누가 내 성에 함부로 들어왔어?' 마녀는 화가 나서 소리쳤어.

민이는 울먹이며 엄마를 찾으러 왔다고 말했어. 그러자 마녀는 민이에게 갓 짠 신선한 우유를 한잔 주었어. (흰 우유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한 노림수였다)

민이는 우유를 잘 먹고 힘을 내서 두 번째 방문을 열었어. 거기엔 울창한 숲이 있었고 숲 한가운데 과자로 만든 집이 있었지.(아이의 끊임없는 요청으로 최근 헨젤과 그레텔 동화책을 백번쯤 읽어주고 있다)

과자로 만든 문을 아작아작 먹고 안에 들어간 민이는 거기서도 엄마를 찾을 수 없었어. '엄마 어디에 있어요?'

그때 어디선가 빨간 머리 마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누가 내 집을 갉아먹었어?' 깜짝 놀란 민이는 얼른 밖으로 도망쳐서 세 번째 방문을 열었어.

거기엔 긴 계단이 있었어. 백개 계단을 내려가자 커다란 거북이가 한 마리 있는 거야.(계단 백개를 다 세고 내려가 거북이 만날 때쯤엔 아이가 자고 있기를 바랐는데...)  

민이는 거북이에게 엄마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어. 거북이는 민이를 등에 태우고 바닷속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용궁으로 데려가 주었지.(이건 별주부전인가)

그랬더니 거기에 엄마가 있지 뭐야?(용궁에서 엄마를 만났으니 심청전인가)



그 순간 가만히 귀 기울여 엉터리 동화를 들으며 코를 훌쩍이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무서워! 무서워.. 엄마 오늘 얘기 렇게 무서워요? 엉엉


엄마가 없어지는 것 빼고는 평소 하던 이야기랑 똑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도 깜짝 놀라 아이를 힘껏 끌어안으며 달랬다.


-엄마 찾았는데 뭐가 무서워? 엄마 여기 있잖아.

-엄마 없어지는 얘기 너무 무서워. 다음부터  이야기 하지 마요. 엉엉, 엄마 울음이 안 멈춰요,


아아. 아이에겐 엄마가 온 세상인데,  엄마가 없어지는 이야기 같은 걸 해주다니 내가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민아, 민이가 엄마를 소중하게 대해주면 엄마는 영원히 민이 옆에 있을 거야.


말해놓고 살짝 찔. '영원히'라니.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아주 소중하게 대해줬어. 엄마도 아빠를 소중하게 대했고. 그래서 아빠는 엄마 마음속에 아주 오랫동안 있을 거야. 민이가 엄마를 소중하게 대해주면 엄마도 민이 옆에 아주 오랫동안 있을 수 있어. 그래서 좋아하는 건, 정말 소중하게 대해줘야 하는 거야.


아이는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고 온 힘을 다해 내 목을 껴안았다.


아이는 긴 울음 끝에 다른 때보다 빠르게 잠들었다. 이런 게 훈육이 되긴 했을까, 혹시 아동학대였던 건 아닐까. 육아는 정말 정말 어렵다. 나는 품에 틀어박혀 자고 있는 아이를 조심스레 떼내었다. 어쨌거나 육퇴다.

이전 08화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