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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Feb 11. 2024

아들을 낳았다

나는 네가 너라서 좋아

내 아이는 남자아이다.


아이를 가졌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였고 두 번째로 궁금했던 건 아이 성별이었다.

딸이 좋냐 아들이 좋냐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쿨한 척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다고 하였다. 어렵게 생긴 아이가 건강하게만 태어나준다면 큰 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심으론 원하는 성별이 있었던 모양이다.

의사 선생님이, 아빠랑 목욕 다니면 되겠다고 말하는 순간 표정관리가 안되었던 걸 보면 말이다. 남편은 마냥 해맑았다. 그는 진심으로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었던 것 같다. 그건, 아이가 원하는 성별임을 알아서 기쁜 표정이 아니라, 앞으로 만나게 될 아이에 대한 순수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반면에 나는 그날밤부터 출산 직전까지도 매일 인터넷 검색창에 이런 걸 썼다. '배 속 아이 성별 바뀔 수도 있나요', '아들의 장점'


딸이 갖고 싶었다. 흰 얼굴에 크고 예쁜 눈, 작약같이 붉은 입술, 백설공주처럼 예쁘고 상냥한 딸이면 좋을 것 같았다. 부드러운 머릿결을 곱게 빗어 이리 땋고 저리 땋아주거나, 레이스 달린 드레스를 입혀주거나, 마치 딸을 위한 장난감인 척하면서 내 어린 시절의 로망이었던 장난감들을 사 모으고 싶었다. 왠지 딸은 키우기도 쉬울 것 같았다. 같은 무게의 아기여도 딸이랑 아들은 안기는 감촉이 다르다던가, 딸이 더 부드럽고 포근하게 안긴다고 했다. 나는 딸에 대해 분명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영 근본 없는 환상은 아니었다. 우리 엄마도 딸이랑 아들이 둘 다 있는데 내가 보기엔 딸이 확실히 더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아들은 좀 별로였다. 무뚝뚝하고 거칠었다. 물론 우리 엄마 아들만 그런 걸 수도 있다. 우리 엄마 아들, 남동생이 가끔 내게 던진 저주는 '나 같은 아들이나 낳아라!'였고, 내가 질색하면, 남동생은 내가 그런 반응일 줄 예상했으면서도 짐짓 상처받은 척하곤 했다.

나는 진심으로 남동생 같은 아들일까 봐 걱정하면서 한편으론 남편 아들인데 남편 닮은 아들일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이가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남편을 보고 자라 그런 사람으로 자라나길 원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태어난 지 삼십일 만에 아빠를 잃은 아이가 아빠를 배우지 못할 것이 무서웠다. 좋은 아빠가 돼서 따뜻한 세상을 알려줄 당신이었는데, 그는 채 아빠가 되어보지도 못했다.


나는 다혈질인데, 남편은 차분했다. 나는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데 남편은 침착하고 무던했다. 나는 남보단 내가 먼전데, 남편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는 상대방이 상처받을 말은 함부로 뱉지 않았다. 그가 있어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가 믿는 대로 보는 대로의 내가 되길 바랐다. 멋지고 똑똑하고 다재다능한 사람이기를. 내가, 한없이 좋은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이제는 아이가 있어, 이 아이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근데 남편에게 좋은 사람인척 하는 것과 아이에게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배려하는 만큼 나를 배려해 주었는데, 아이는 내가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야 하는 존재였다. 내가 모든 걸 다 해주어야만 생존 가능했던 갓난아기가 쑥쑥 자라 자아를 갖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한층 더 어려웠다.


나는 아이에게 무서운 사람인 동시에 따뜻한 사람이어야 했다. 엄격하고도 다정해야 했다. 내가 만만한 사람이어서 언젠가 아이의 어긋남을 바로잡을 수 없을까 봐, 세 살 아이의 버릇이 여든까지 갈까 봐 자주 걱정했다.

아이의 울음 하나하나에 흔들려 중심을 잡지 못할까 봐 냉정하다가 가끔 냉정함을 넘어 싸늘해지기도 했다. 중간이 어려웠다.

어느 날은 그냥 다 내려놓고 싶었다. 왜 세상에 당신이 없어 나 혼자 아등바등 모든 걸 감당하고 있나 벅차서 무너져 내리는 날도 수없이 많았다.


마음이 급할 땐 애한테 큰 소리도 내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작은 걸로도 애를 잡았다.


나는 정말이지 무서웠다.

애가 당신처럼 크지 못할까 봐, 당신을 보고 자라지 못해 당신을 닮지 못할까 봐, 나의 부족함이 아이를 메마르게 할까 봐 수시로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어떻게든 아이에게 당신을 물려주고 싶데,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만도 내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진했다.


러는 사이에 그 사람이 떠난 지 삼 년이 훌쩍 지고, 시간이 나와 함께 아이를 키웠다.


신기하게도 이 아이는 남편을 닮아갔다.

말 한마디도 따뜻하고 예쁘게 했다.

아이가 추울까 봐 내 겉옷을 벗어주려 하면, '괜찮아, 그건 엄마 입어요. 엄마 추울까 봐.'라고 했다. 맛있는 게 생기면 엄마 먼저 챙겨 입에 넣어 주었다. 같이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엔 엄마가 무서울까 봐 그런다며 손을 힘껏 잡아주었고, 내가 저를 두고 외출할라치면 쫓아와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고, 차 조심해여 그래야 민이가 걱정 안 하니까' 하고 당부했다.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헤어질 때면, '보고 시플꺼야'하고 말하며 아쉬움을 질끈 참는 표정을 하고도 씩씩하 손을 흔들었고, 하원시키러 가면 '보고 싶었써요'하며 내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내가 아이에게 락같이 화를 내고 자책을 할 때면, '엄마가 화내도 좋아. 따뜻한 엄마도 좋고 차가운 엄마도 좋고 뜨거운 엄마도 좋아'라고 말해 주었다. 에선 매일 안아달라며 칭얼거리는 아기이면서도 밖에 나가면 제법 의젓한 척 '내려주세여, 엄마 허리 아플까 봐'라고 했다.


친구들도 형제들도 '너 같은 엄마 아래 어떻게 저런 애가 나왔나' 했다. 다행이다. 보고 배워야만 닮는 줄 알았는데 유전이라도 돼서 안심이다.

이젠, 삼신할머니가 시간을 되돌려 딸을 점지해 준대도 내 아들이 좋다.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너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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