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네가 아빠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동안엔 늘 언제나 너의 곁에
남편의 3주기가 지나고 명절이 되어 안식원을 찾아갔다. 아이를 안아 올려 유골함을 가리키며 아빠한테 인사하라 하였더니, 이건 눈도 없고 코도 없는데 왜 아빠예요? 하고 물어본다. 나는 딱히 대답해 줄 말이 없어 그러게, 하고 말았으나 속으론 정말 눈도 없고 코도 없는 이게 왜 너의 아빤가 하였다.
마침내 내게 돌아온 당신은 한 줌 재의 형상이었다. 발인 때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유골함을 닫기 직전의 하얀 재를 마주한 것이 당신과의 마지막 만남인 셈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 하얀 가루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제 막 불가마에서 나온 가루는 따뜻했다. 당신의 체온처럼.
그 따뜻하고 듬직하던 사람이 한 줌만큼 초라하게 되어 작은 유골함에 담겼다. 그리곤 답답하고 좁은 납골당 한 칸에 자리 잡았다. 그곳은 규정상 사진을 놓을 수도 붙일 수도 없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게 삭막하고 차가운 유골함뿐이어서 아이 입장에선 더욱이 아빠란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들어 아이가 자주 묻기 시작했다.
아빠는 어디에 갔으며, 언제 돌아오는지.
갓난아기 때 제 아빠와 함께 찍힌 몇 안 되는 사진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더니, 아빠는 아주 아기 때에만 올 수 있는 거예요? 하고 묻기도 했다.
나는 아직 만 세 살의 아이를 위해 준비한 그럴듯한 답변이 없어서, 그저 한결같이 대답했다. 아빠는 아주 멀리에 있으며 다신 올 수 없을 거라고.
아이는 의아했을 것이나 그 이상을 묻지는 않았다. 어쩌다 생각날 때마다 앵무새처럼 같은 질문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아빠는 언제 와요? 아빠는 아기 때에만 올 수 있어요?
아빠는 아주 아주 멀리 있어서
다신 올 수 없어.
아가야, 그런 아빠도 있는 거야. 그렇지 않은 아빠도 있는 거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는 말은 이 아이에게 제법 잘 먹히는 대답이다. 그건 대충 지어낸 말도 아니고, 한편으론 수준 높은 듯하면서도 딱히 못 알아들을 말도 아니다.
그래선지 아이도 그 말을 자주 써먹는다.
한 번은 친정아빠가, '너는 형아인데 왜 혼자서 옷도 못 갈아입냐' 놀렸더니 대번에 '혼자 할 줄 아는 형아도 있고 못하는 형아도 있는 거예요'라고 대꾸해서 친정아빠의 말문을 막히게 한 적도 있다.
하도 자주 써먹어서 언젠가는, '장난감 정리를 잘하는 형아도 있고 못하는 형아도 있어요'하기에 '장난감 정리를 못하는 형아는 없어!'하고 버럭 화를 낸 적도 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 엄마다. 그걸 알면서도 완성되기 어려운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 위안 삼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엄마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거라고 변명을 덧대면서.
아마 그 사람이었다면, 나보다 훨씬 이 아이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 주었을 것이다. 잘 참고 기다려주었을 것이며, 못 참아 분통을 터뜨리는 내 손도 꼬옥 잡아주었을 것이다.
아쉽다. 그 사람이 그럴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든 이제 그걸 증명할 수가 없게 되어서 억울하다.
나도 모르게 그런 아쉬움을 입 밖으로 낸 것을 귀담아 들었던지, 나에게 된통 혼난 아이가 입을 삐죽하며 말했다.
-아빠는 안 혼냈을 텐데.
아마 언젠가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을 말을, 아이가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는 게 놀랍고도 아팠다.
내가 아빠 없이도 잘 살고 있는 아이에게 괜히 그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한 톨 심어 놓았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어쩌면 내가, 내 아픔을 온전히 혼자 끌어안고 가는 강하고 완성된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이 아이는 남보다 어린 나이에 남의 아픔을 나눠 받는 것부터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따금 후회하고 반성하면서도 끝내 이 아이를 아빠가 없어 불쌍하다고 여기진 않을 것이다. 내 자신을 남편 없어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으려 노력하듯이. 다만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나눌 아픔이 없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강한 엄마가 되는 것보단 그게 더 쉬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