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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Jan 21. 2024

나는 펭귄은 아니지만

열린 마음으로 불필요한 만큼 고민합니다

중학교 국어 수업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절절한 시로 써내 뭇사람들을 울렸던 어느 시인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했다는 일화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지금에야 문득 그 시를 적어 내려갔을 때의 그 시인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그의 마음은 어디까지 구멍 나 있었을까. 그 처절하고 처연한 공허함은 대체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 건지. 아마 시인 본인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화장장에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다본 창밖의 풍경들을 기억한다. 여름의 무성한 푸르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당신을 차갑고 외로운 곳에 혼자 두고 온 것 같은 죄책감과, 나를 구성한 신체기관 중, 중요한데 뭔지 모를 무언가를 놓고 온 것 같은 상실감이 뒤섞였다.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건 놓아두고 나아가는 일뿐이었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나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반드시 재혼할 것이라고 떠벌렸다. 우리 부부의 금슬이 각별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절친한 지인들은 내 죽어가는 낯빛을 보고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을 이해해 주었으나, 그런 나를 남편 죽자마자 재혼하겠다는 미친년으로 생각해 절연한 친구도 있었다.  애는 사고 이후의 내 얼굴을 본 적이 없어 몰랐을 것이다. 내가 정말 마지못해 살아 있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었던 반려를 잃고 반토막짜리 되었던 순간 삶을 선택한 이유는, 만난 지 고작 삼십일 남짓 된 갓난아이가 아니라, 내가 다시 온전 조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이었던 것 같다.


이성이 돌아오고 나니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재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아빠, 엄마, 아기로 이루어진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바란 것은 아주 소소한 행복이었는데 남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그 현실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 내가 생각해 낸 것이 고작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나는 스무 살에 첫사랑을 만나 그 사람하고만 십 년 연애를 하다 결혼했다. 그 사이에 그는 군대에 다녀왔고, 내가 취직할 때쯤 복학하였다. 많이들 나를 얼빠지고 순진한 여자아이로 여겼다. 수많은 충고를 받았다. 군대에 다녀오면 남자는 여자 보는 눈이 바뀐다거나 결혼은 현실이어서 경제력이 좀 있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사실 나는 순진하기는커녕 아주 계산적이고 실속을 잘 챙기는 사람이라, 그 남자가 잘생기고  비전 있어서 결혼한 건데 말이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려 한 젊은이들이었고, 믿을 건 서로의 성실함뿐이었다. 노력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꾸준히 부딪쳐 배워나갔다. 작고 하찮은 성공들이 삶에 대한 기대를 주었고, 우리는 서로의 무너짐을 받아내며 그 시간들을 제법 잘 살아냈다.


내가 한 사랑은 호르몬의 농간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쌓아온 데이터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내 부족함을 알고도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내가 당신을 위해 내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어쩌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또다시 그런 사람이 내 인연이 되어줄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아주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언젠가, 남극의 신사 펭귄에 관련된 다큐를 보았다. 수컷 펭귄이 암컷 펭귄과 교미하기 위해 암컷 펭귄의 새끼를 밀쳐냈다. 새끼 펭귄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결국 죽음을 맞았다.


어린아이를 위해 재혼을 안 하겠다는 엄마의 희생정신 같은 건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치이고 치이다 잊힌 새끼 펭귄의 쓸쓸한 작은 날개를 생각해 볼 따름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덮는 거라지만 나의 외로움을 채우는 것에는 이제 지켜야 할 것에 대한 명확한 책임감이 따른다. 누군가가 아이에게 좋은 남자어른이 되어줄 순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남자어른도 이 아이의 진짜 아빠는 되어 줄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더없이 신중해진다.

나는 의외로 열린 마음이고 불필요한 만큼이나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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