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끄는 원동력에 대한 탐구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도립 공공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언니의 손을 잡고 도서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을 때, 그 4층 건물이 얼마나 거대해보이던지.. 그때의 놀라움과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벽에 꽂혀있는 수천 권의 책을 보며 약간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역사, 철학, 종교, 사회, 문화... 각 섹션 별로 끝없이 늘어져있는 책들을 보자,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무형의 지식 체계가 갑자기 내 세계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매주 이곳에 온다면 여기 있는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을까? 어린 마음에 생각했다.
어른들이 가는 종합자료실에 있는 책들은 초등학생이 소화하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나마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사연집 정도는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책을 읽으며 평범한 사람들도 저마다의 삶 속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도서관을 다니며 내 세계가 얼마나 좁은 것이었나, 점차 인지하게 되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나'라는 한 사람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작디 작음을 인지하고 나니 내 세계를 더 확장하고 싶어졌다. 데미안에 나오듯이 내 세계를 계속해서 깨나가고 싶었고, 외연을 넓혀가고 싶었다.
우선은 내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려면 서울로 가야했다. 뭔가 모를 큰 세상에 대한 갈망이 어릴 때부터 내 마음 속에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20살 재수 끝에 SKY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더 멋진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를 넣어두면 그와 비슷하게 변하지 않을까? SKY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올까? 그들을 가까이서 관찰하면서 '괜찮은 삶', '더 상위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될 것만 같았다.
근데 결론적으로 21살부터 25살, 대학교~대학원 1학기까지 다니면서 느낀 건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라는 사실이었다. 나처럼 자꾸 꿈틀대면서 배우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 있나 하면, 평온하게 자기가 가지 것들을 지켜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학벌은 그 사람의 기질이나 성향을 결정지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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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뭘 하고 싶은 건지 몰라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던 것 같다. 프리랜서 작가로 8개월을 일했고, 카메라를 만져본 적도 없지만 운좋게 작은 프로덕션의 조감독으로 일 했다. 그러다 광고 회사 인턴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유니콘 스타트업에서 4년 째 일하고 있다.
이 분절된 경험으로 느낀 바, 각자 재능의 영역은 모두 다른데 이걸 누가 얼마나 잘 찾아서 확대해버리는 가, 이게 직업의 소양을 결정짓는 모든 것이 같았다. 또 뭐든 내가 본능적으로 재밌다고 느끼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두드려 봐야 '나 이거 잘하는 구나' 혹은 '이 일은 안맞구나' 하는 깨달음을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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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바쁜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는 동아리를 6개 했었고, 대학교 때도 온갖 봉사활동, 학생회, 그 외 여러 동아리 활동들을 했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경제 스터디, 코딩 스터디, 독서 인증방, 영어 인증방... 온갖 인증과 챌린지의 넝굴 속에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이 모든 활동이 힘에 부친다거나,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 솔직히는, 이 정도는 다 하고 살지 않나? 이걸 안하면 다들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나는 고여 있는 게 두렵고 싫다. 특히 직장인이 되고나서는 고이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더 쳐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내가 배우기를 멈추면 지금 선 이 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세상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도 습관이기 때문에 굳어가는 뇌를 계속 말랑하게 유지하려면 애써서 노력을 해야 한다.
현실에 타협해서, 내 체력과 타협해서, 적당히 하라는 주변의 말에 타협해서 자라는 걸 멈추고 싶지 않다. 내 주변에 더 다양하고 멋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직 만족하고 있지 않다. 아니,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 얼마나 넓을지.. 난 놀랄 준비가 되어 있고, 계속 나 자신을 놀라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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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향상심이 많은 사람이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말이 나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어릴 때부터, 내 작은 세계를 깨고 싶어했다. 10대 > 20대로 넘어오면서 내가 살던 지역과 부모님의 품을 떠나 서울로 왔으니, 20대 > 30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우리나라 > 외국 으로 내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가고 싶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찾아봐야 하고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연어처럼, 바다로 갔다가, 강으로 왔다가 여기저기 회유하며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고 싶다. 내 만족이 그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나는 자라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곳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타협하지 않고 싶다. 이건 삶에서도,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내가 보는 많은 것들에 투영되어 있다. 나의 외연과 내연을 넓혀주는 것들에 여전히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