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추억이 다른 시점에 쓰여진 글
그린 라이트, 사실 '사랑'은 레드 라이트이다!
위험을 예고하는 동시에 멈추면, 안전하니까,
그래도 요즘은 그린 라이트가 유행이니까, 내 삶의 그린라이트 이야기 하나!
내 남편은 우유 소화 능력이 좀 약하다. 락토 뭐시깽이가 부족한가 보다. 처음으로 단둘이 만난 날, 저녁은 해물찜을 먹고, 영화는 풍산개를 봤다. 얼마 전 다시 찾은 남극회관의 사진 한 장 투척, 우리가 처음 밥 먹은 곳이다.
매운 해물찜을 먹는데, 맥주를 시킬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 남자랑 결혼할지도 모르는데, 첫 만남부터 술을 시키면 날 이상한 여자로 볼 거야"라고 생각했다.
아는 건 이름과 얼굴뿐인 한 남자를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그런 일은 서른을 넘긴 내 나이에도 처음이었다. 내가 미쳤나 봐 하며 찰나의 생각을 저 멀리 떨치우고 공깃밥과 해물찜을 가볍게 해치우고 음식점을 나섰다.
텁텁한 매운 고춧가루 맛을 달래고자, 불광동 카페베네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저녁은 남편이 샀기에 내가 커피를 사기로 했다.
아메리카노를 먹겠다는 그에게 굳이 카페베네는 카페라테가 진리라며 북북 우겨 아이스 카페라테 두 잔을 시켰다. 속으로 이 사람 똘끼 충만인데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황당하랴,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켰는데, 계산하면서 바꿔 시키는 여자가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엔젤인어스가 아니라 카페베네였군.)
난 예나 지금이나 맛있는 건 나눠 먹고, 좋은 건 같이 하자 주의이다. 나에게 맛있다고 남도 맛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맛있냐고 연신 묻는 내게 남편은 여전히 매력적인 그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아이스 카페라테 두 잔을 사들고 쪽쪽 빨며, 총총히 가서 영화를 보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씻고 나오니,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카페라테 맛있어요...“
이게 뭐지?!
"오늘 즐거웠어요.", "잘 들어가셨어요?" 등등 예측 가능한 문자 한 통과는 다르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문자였다.
나도 뭔가 재치 있게 답문자를 보내고 싶어서 한참 고민하다가, 그렇죠?!라고 보내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얼마 전에, 왜 문자를 그렇게 보냈냐고 물으니, 자꾸 생각나게 하려고 그랬단다. 허걱, 난 제대로 걸렸던 것이었다. 썸 타는 사람들에게 tip,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꾸 생각나게 만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