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76화
[대문 사진] 루앙 대성당 제단
제단을 둘러싸고 제단 뒤쪽으로 열려있는 회랑은 순례자의 회랑으로 불린다. 순례자들이 기도하면서 한 바퀴 돌아 나오도록 설계되었다. 성가대석을 둥그렇게 에워싼 회랑에는 석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911년 루앙의 백작이 된 롤로의 무덤이고, 두 번째 무덤은 롤로의 아들인 긴 검을 찬 기욤(기욤 롱그 에페)이다. 부자는 루앙 백작을 계승한 인물들로 주교좌 성당인 루앙 대성당에 행복하게 나란히 잠들어 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나오다 보면 롤로의 석관 반대편에 사자왕 리샤르의 석관이 나온다. 역사와 전설을 오간 사자왕 리샤르는 고귀한 심장을 석관 안에 묻어두었다. 그 옆으로는 노르망디 공작이자, 사자왕 리샤르의 형인 앙리가 잠들어 있다.
노르망디 공국의 가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모두다 대성당에 묻힌 것은 아니지만, 그 시조에 해당하는 롤로의 무덤이 루앙 대성당에 자리 잡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롤로는 분명 루앙 대성당에 묻혔다.
그러나 추측해 보건대 프랑스 국왕 필립 오귀스트는 사자왕 리샤르와 장 쌍테르 형제와 혈전을 벌일 만큼 적대적이었던 관계로 노르망디 공국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이 땅을 프랑스에 복속시켰다. 또한 노르망디 공국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그 와중에 롤로의 무덤도 당연히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백년전쟁이 벌어지고 루앙은 영국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 시기에 영국인들 편에 가세한 프랑스 인들이 노르망디와 영국을 연계시킨 왕국을 건설한 공작이자 영국왕이었던 기욤(윌리엄 1세)의 선조의 석관을 다시 제작하여 성당 안에 안치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롤로의 무덤이고 기욤 롱그 에페의 무덤이며, 사자왕 리샤르의 석관이자 앙리의 석관이다.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이자 영국왕이었던 기욤(윌리엄)은 그가 공국의 수도로 정한 캉의 아베이 오좀므(생테티엔느 성당)에 잠들어있다. 그의 아내 마틸드 역시 캉에 소재한 아베이 오담므에 묻혀있다.
911년 루앙의 백작이었고 노르망디 왕국을 건설한 롤로가 루앙 대성당에 묻혀있다는 것은 프랑스 입장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그 하나는 이방인의 역사가 프랑스 역사에 편입되었다는 의미라 한다면, 다른 하나는 이로써 프랑스가 영국을 한때 지배하기도 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흥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롤로의 후손들은 1066년부터 1204년 멸망할 때까지 바다를 사이에 둔 채, 노르망디 공국을 이끌었으며 영국을 지배하기도 했다. 프랑스 인들은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루앙 대성당에 안치된 롤로의 무덤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노르망디 왕국의 역사적 인물들과는 달리 한쪽 벽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아미엥의 휴 대주교의 무덤은 이 네 명의 무덤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랑 출신으로 루앙 대주교를 지낸 아미엥 휴 대주교의 무덤은 12세기에 로마네스크 풍으로 제작된 것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석관이란 것 말고는 내 흥미를 끌기에 너무 미약하다. 역사적 사건과는 무관한 한 종교인이자 성직자의 무덤이 내 여정의 목표와 너무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