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형태의 성당 내부

몽생미셸 가는 길 77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신자석에서 바라본 성당 내부


성당 내부는 대부분 그렇듯이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 이래로 십자가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제단은 동쪽 예루살렘을 향해 있고 입구는 서쪽으로 나있으며, 중앙 회중석과 성가대석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다.


중앙 신자석 통로는 바실리카 양식 이래로 신랑이라 불렀다. 신랑을 중심으로 좌우로 난 회랑은 측랑이라 불렀다. 신자들은 항상 측랑으로 들어서서 신랑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또한 제단을 중심으로 좌우로 다시 회랑이 들어섰는데(이로써 성당 내부는 완벽한 십자가의 형태로 구현된다), 이 좌우 날개 부분에 해당하는 회랑을 가리키는 말이 프랑스 어로 트랑셒(trancept)이라 부른다.


중앙 회중석과 성가대석, 그리고 신자석과 성가대석 경계에 좌우로 나있는 익부까지 더하면 성당 내부는 완벽한 십자가의 형태를 이루며 그 중앙에 제단이 위치한다.


고난과 순교의 상징인 십자가 한 가운데 예수의 성상이 자리하듯 상하 좌우가 교차하는 실내 한 중심에 제단이 놓이고 예수의 복음이 설파되는 기막힌 제식이 바로 로마 가톨릭이 거행하는 미사다.


또한 이 제단에서는 예수의 몸과 피를 나누는 상징적인 제식인 성찬식이 거행된다. 성찬식을 위하여 제대에는 신부가 축성한 밀떡과 포도주가 놓이고, 신부는 성찬식 때마다 신자들을 향하여 “이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피”라는 말과 함께 고해한 신자들이 이를 영할 수있도록 의식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대신한 밀떡과 포도주를 영함으로써 저 갈릴리 호숫가에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식을 기억케 함이다.


911년 바이킹의 수장 롤로가 샤를 3세 단순왕과 협약을 맺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래 그의 후손들은 모두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바이킹조차 동화된 기독교 문명은 살과 피의 예식에 있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함으로써 그들은 기독교의 부활의 신비에 젖어갔던 것이다.


그 수많은 이방인들이 프랑스의 성당에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기둥을 부여잡고 오열하던 끝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처럼 롤로와 프랑스 여인 사이에 태어난 기욤과 후손들은 다시 프랑스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톨릭에 귀의함으로써 후손들 역시 프랑스 땅이라 할 수 있는 노르망디에 거주하면서 이 의식을 되풀이하면서 동시에 조상이 파괴한 기독교 문명을 재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0세기에 유대인 출신의 시인 폴 클로델이나 파리 대주교이자 추기경이었던 장 마리 뤼스티제가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기둥을 부여잡고 흐느끼다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은 프랑스에의 동화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기독교 문명은 많은 이방인들을 동화시킬 만큼 강력했고 순결한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고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