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78화
[대문 사진] 성녀 잔 다르크를 추모하기 위한 제단
고딕의 특징은 수직적 상승에 있다.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육신이 부활하여 영적인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 또한 기독교도들을 자극한 절대적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구체화한 세속 안에 자리 잡은 천상의 세계가 고딕이었다.
원죄를 안고 태어난 인간은 세속적인 모든 탐욕과 허물을 벗어던진 뒤 비로소 영적인 해방을 맞이하는데, 이 영혼이 향한 곳이 저 높은 곳으로 표상되는 천국이다. 그 천국으로의 수직적 상승을 영적으로 가능케 한 장소가 12세기부터 지어진 고딕성당들이었다.
죄지은 이들이 참회하고 참회 끝에 다시 깨끗하게 정화된 영혼이 다다를 수 있는 천국에의 기쁨은 중세인들로 하여금 고딕성당으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그들 모두는 성유물에 손을 대기만 해도 육신의 병이 낫는다고 믿었으며, 살아가는 동안 천국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게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자리 잡았다.
천상의 삶을 꿈꾼다는 건 미혹이나 미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교회를 통해 체계화되고 실천적인 자장을 띠게 되었다. 그 바탕 위에서 백년전쟁의 영웅, 오를레앙의 처녀 잔 다르크가 탄생한 것도 전혀 거짓이 아니다.
잔 다르크는 천사장 미카엘의 계시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의 미약한 몸이나마 조국 프랑스의 독립을 지키고자 불사르고자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백년전쟁을 통하여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제일의 동인이었으며, 결국 영국인들로 하여금 프랑스를 포기하게 만들면서 그들을 섬 쪽으로 완전히 내몬 쾌거를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했다.
어린 소녀가 나라를 구한 것은 고난과 고통과 순교의 수직적 상승이 완결지은 부활에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종교적 믿음만으로는 불가한 전투력이 신앙을 통해 고취되고 우매한 왕실을 재건하기에 이르렀으며, 무지몽매한 민중들에게 조국수호라는 역사적 실천과제를 부여한 셈이다.
루앙에서 산 채로 화형 당한 그녀는 마녀라는 죄명 대신 프랑스를 구한 구국의 성녀로 추앙받고 있는 것이 이 같은 사실을 예증해주고 있다. 그녀는 살아생전에 이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한 채 한 줌 잿더미로 사라졌지만, 역사는 결국 그녀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나는 처음 들어온 남쪽 파사드 쪽으로 걸어 나와 제단 앞 신자석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 오른편으로 잔 다르크를 위한 제단이 놓여있고 제단 몸체에는 그녀가 살아생전 사용했음직한 거대한 칼이 매달려있다.
종교란 항상 벅찬 과제다.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무한한 상징이 지금 내 앞에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 아니오와 예라는 갈림길에 서있다. ‘예’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믿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다. ‘아니요’라고 대답하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그때부터 귀찮은 이야기들이 꼬리를 문다. 오늘 이 순간만큼은 ‘예’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21세기의 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이 고딕성당 신자석에 앉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처럼 오직 믿음뿐이다. “예! 믿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믿고 역사적 주인공들의 행적을 믿으며, 그들의 서사가 이룩한 프랑스의 찬란한 문명건설을 믿으며, 그 되풀이 또한 의심치 않고 21세기에 다시 부활한 그들의 순결한 영혼들의 메시지를 믿습니다.”
압도적인 크기로 지어진 건축물, 151미터의 고도로 상승하는 고딕 첨탑의 위용에 짓눌린 우매한 인간은 성당에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믿음의 실체를 깨달아가는 중이다.
클로드 모네가 그린 루앙 대성당 서쪽 파사드 쪽을 향하여 중앙 신자석을 걸어 나오니 교회 바깥세상은 어느새 구름마저 걷힌 겨울의 따사롭고도 화사한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은 한 화가의 인생 자체를 단숨에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모네는 이 그림들로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그림을 팔아 세 들어 살던 농가를 구입하고 부지를 장만하여 연못을 파고 수련을 키우면서 평생 예수와 붓다가 이룩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바란다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부단한 노력을 통하여 그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는 자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을 선각자나 성자 혹은 지혜로운 사람이라 칭한다.
모네는 예술을 통해 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득도한 예술가였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들을 바라볼 때마다 한 인간이 그린 그림이란 생각이 들지 않고 득도한 예술가가 내리긋는 선(禪)이란 붓글씨 획처럼 색조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한 화가의 명상의 세계를 접하는 느낌마저 든다.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있는 「수련」이 그렇다. 그는 정말로 색채를 자유자재로 사용한 보기 드문 화가였으며, 한 번 몰입한 세계의 끝까지 나아간 백 년 전의 작가였다.
나는 그가 그린 루앙 대성당 연작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오르세 미술관, 오랑쥬리 미술관 그리고 마르모탕 미술관은 모네의 예술세계를 반추해 볼 수 있는 현장이고 교과서다.
그는 시각에 따라, 햇살의 양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성당을 화폭에 담은 것이지만, 주제는 하나였다. 고딕 대성당! 그의 그림들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던 흔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