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유적의 상징적 의미

몽생미셸 가는 길 88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쥬미에쥬 폐허 유적


수도원장 관사를 거쳐 다시 노트르담 성당으로 내려오는 길을 산책하면서 나는 다시금 텅 빔의 의미를 천착해보았다.


텅 비어있다는 것은 원래 무엇으로 가득 차있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꽉 차있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니면 애당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애초에는?


쥬미에쥬 수도원은 대단히 흥성했던 기독교의 성지였다. 노르망디 공국령에 속해 있었을 때는 적어도 그러했다. 이후에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면서 몇 번 발전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수도원은 쪼그라들고 파괴되어 심지어 민간인이 수도원 영지를 매입하면서 교회건물을 이루고 있던 돌들마저 뜯겨나가면서 수도원은 채석장으로 돌변하였다.


그러나 낭만주의 작가들 덕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최악의 사태만큼은 면했다. 그렇듯이 낭만주의 작가들은 한결같이 쥬미에쥬의 수도원 유적을 상탄했다. 그 바람에 쥬미에쥬 수도원은 재조명되었고 결국 이 지방의 역사유적이자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작가들 어느 누구도 쥬미에쥬 수도원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 폐허유적이 살아남았을 수 있었을까?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들이 아니었다면 교회건물의 벽체마저 완전히 소실되어 오로지 지상의 잔디밭만이 예전에 그 자리에 수도원 건물이 있었음을 일러주었을 것이다.


그처럼 세월의 영고성쇠는 남아있는 교회 기둥들에게서 읽힌다. 나는 또다시 앙상한 몰골로 남은 교회 기둥들이 내게 뭐라 이야기하는 지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본다. 돌기둥 사이 텅 빈 허공엔 오로지 적막감만이 감돌고 명상의 마을 또한 저녁연기에 아늑히 휩싸여 가고 있다.


아쉬워서 정말 아쉬운 마음으로 노트르담 성당의 종탑을 다시 올려다본다. 짙푸른 녹색의 틈 사이로 흰 석회암 종탑이 우뚝 서있다. 팔각형으로 마무리된 높이 46미터에 달하는 두 개의 종탑은 바이킹들이 이룩한 로마네스크 기독교 문명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나보다 30년 먼저 로마네스크 건축 답사를 떠났던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은 로마네스크 예술을 다음 같이 정의했다.


“로마네스크 예술에 대한 나의 애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 프랑스의 베즐레[1]나 콩크[2],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와 스페인의 상궤사같은 도시에서 나는 일찍부터 로마네스크의 마술에 낚였다. 도대체 어디가 좋았을까? 단순해서? 진지해서? 묘한 환상을 자극해서? 잘 모르겠다. 정말이지 모르겠다. 그저 어느 것 하고도 닮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다. 어떤 건축 형식은 분명히 로마 바실리카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초기에는 수도사들이 중동과 근동 지역에서 식물과 동물 모티프를 가지고 왔다. 또 기독교의 상징 기호는 이미 그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로마네스크는 고전 시대 이후로는 유럽에서 처음 대규모로 일어난 예술운동답게 자기만의 색깔이 있고 세계관이 있다. 사람들의 생각과 믿음(그때는 생각이 곧 믿음이었지만)이 워낙 속속들이 배어서 로마네스크 예술은 돌로 나타낸 세계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을 우리가 지금도 읽을 줄 아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3]


“교회가 더 차원 높은 현실을 나타낸다는 생각은 새삼스러운 발상은 아니다. 그리스 신전이나 불교 사찰에 가본 사람이면 이런 착상에서 생겨나는 상징세계가 낯설지 않다. 그런 곳에서는 드러난 뜻과 숨은 뜻이 마술처럼 꼬리를 문다. 그 오묘한 체계에서는 이미지 하나하나 사물 하나하나가 온전하게 자리를 얻는다. 이런 오묘한 체계를 자기만의 세계관으로 처음으로 몽땅 담아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로마네스크 예술이 주는 매력이다. 로마네스크 교회는 돌로 그려낸 천지창조론이다. 여기서는 모두가 의미요, 윤리요, 형이상학이다. 나중에 오는 고딕 예술에서는 십자가에 묶인 예수가 중심에 오지만, 로마네스크 예술에서는 위풍당당한 예수로, 온 세상의 주인으로, 창조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라는 묘한 녀석을 만들어 낸 시간의 주역으로 나타난다. 로마네스크 세계에서는 벽에서 문틀보까지, 궁륭에서 세례반까지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 사냥, 사계절, 별자리, 죄와 벌의 상징, 부활과 영생, 곰과 뱀, 올라간 꼬리와 파인애플, 쐐기무늬와 사타구니 보호대의 십자가까지 모든 것에 의미가 있었고, 글을 못 읽는 사람도 그것을 알아보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굴러가서 그 안에 있으면 더없이 편안한 우주, 유한한 인생과 유한한 세상을 덧없게 만드는 그런 우주에서는, 사람은 숫자와 기호의 언어에 매달리기 마련이었다.”[4]







[1] 베즐레(Vézelay) 마을은 11세기 창건한 로마네스크 성당이 상징하듯, 성녀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가 안치된 성당으로 유명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들이 반드시 들려야 할 곳으로 명성이 높다. 사자왕 리샤르(리처드)와 존엄왕 필립 오귀스트가 시도한 제3차 십자군원정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2] 콩크(꽁끄) Conques 마을은 인구가 겨우 250여 명에 불과한 프랑스 아베롱 지방의 한 작은 마을이다. 서기 3세기에 성녀 화(Sainte Foy : 스페인 어로는 산타페(Santa Fe)라 불린다)가 13살의 나이에 순교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콩크 마을은 11세기에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생트 화 수도원 교회로 유명한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한 순례자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할 기독교 성지 가운데 한 곳이다. 수사본 삽화가 전하는 성녀가 순교당하는 장면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3] 세스 노터봄, 『산티아고 가는 길』, 에서.


[4]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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