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스크 시대를 떠올리다

몽생미셸 가는 길 89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로마네스크 시대에 세워진 노트르담 성당


로마네스크는 전지전능한 시대였고 구원의 시대였다. 이때는 모두가 천국을 향할 수 있었으며 천국 안에 받아들여졌다. 신은 그 자체로 천국을 구현하고 있었다.


성소를 품은 자들은 오로지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은둔자를 자처했던 관계로 산간벽지 암굴에 틀어박혀 있다가 로마네스크의 세계로 뛰쳐나왔다. 이제는 세상의 구원이 그들의 화두로 떠올랐다.


봉건군주들의 영토에 대한 야욕으로 점철된 전쟁이 끊임없이 빗발치던 시기도 이 시기와 겹쳐진다. 피비린내 나는 속세와의 단절 나아가 아비규환의 세상에 자리 잡은 것이 로마네스크 교회였다.


이제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교회가 나섰다. 어둠 속에서 빛이 승리함을 만인에게 증명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어두컴컴한 교회 실내에 빛을 끌어들인 것이 고딕이요, 고딕은 그러나 절대 희생, 보속과 상징이 필요했다. 전지전능한 신은 이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알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게 된 것이다.


세상 구원, 인류 구원이란 원대한 목표를 위해 인간에 의해 희생당한 신이 다시 부활하여 우리 앞에 재림하는 사람의 아들이 필요한 시대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향하던 시대다. 쥬미에쥬를 비롯한 이 시기에 건설된 수도원 교회들은 이 거룩하고도 숨막히는 기독교 문명의 이행을 고스란히 예시해주고 있다.


쥬미에쥬 수도원은 입구와 출구가 같다. 처음 들어온 곳으로 다시 나가자 보이지 않던 방문객들이 웅성거렸다. 늦은 시간에도 폐허로 변한 유적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구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가판대에는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고 누가 저 책들을 읽는 걸까 하는 생각으로 서너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바이킹들이 이룩한 노르망디』, 『종교 건축』, 『로마네스크 예술』, 이밖에도 서너 권 더 책을 집어 들었지만 단숨에 읽기에는 벅차 몇 권을 슬그머니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정복왕 기욤』을 출판한 오렢(OREP) 출판사가 펴낸 장 르노의 『바이킹들이 이룩한 노르망디』는 바이킹들이 건설한 노르망디를 시대별로 조명한 아주 훌륭한 저술에 해당한다.


저자에 따르면, 바이킹이란 말을 사용하게 된 시기는 2백 년도 채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라틴어로 노드마니(Nordmanni)에 해당하는 노르만(Normands)이란 용어로 오늘날 노르망디에 침공하여 정착한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인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고대 스칸디나비아 어로 비킹가르(Vikingar)에서 따온 바이킹(Viking)이란 말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1947년 프랑스 일 드 헤(Ile de Ré)에서 태어나 바이킹 노르망디인들의 수도이자 성지였던 캉(Caen)에서 수학하고 소르본느 대학에서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스칸디나비아 역사 전문가가 된 장 르노가 써 내려간 바이킹들에 의한 노르망디의 서사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이 땅에 정착한 노르망디 인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것이다.


차를 몰아 쥬미에쥬 매리(주민센터)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 나오자 마을의 문장을 한 깃발이 펄럭이는 건물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파랑 바탕에 노란 십자가, 그 네 귀퉁이에는 네 개의 은빛열쇠가 반짝였다.


쥬미에쥬 마을 문장


열쇠가 네 개라! 사계절, 동서남북 그보다는 4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서쪽 파사드 최후심판의 문 부조물에는 정중앙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천사, 사자, 황소, 독수리가 에워싸고 있다. 이는 네 명의 복음사가들인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을 상징한다.[1]


명상의 마을 쥬미에쥬는 마을 이름마저 상징적이다. 쥬미에쥬(Jumièges)란 말은 9세기 때 창건된 성 베드로 성당에서 유래하는 ‘진귀한 돌(pierre précieuse)’을 뜻한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은 쥬미에쥬 수도원 전체가 그처럼 진귀하고도 고귀한 돌들로 가득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차의 방향을 틀어 왔던 길과는 정반대 방향 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이 길은 묵상의 도시 벡엘루앵과 리지외로 향한 길이다. 나의 명상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 중세교회 철학자들의 관상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설파한 신의 존재에 대해서조차 아직 명료한 아포리즘을 얻기 전이니 말이다.




[1] 야훼(Yahweh)란 4개의 자음도 이와 같이 Y는 천사(사람)를, H는 사자를, W는 황소를, 또 다른 H는 독수리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