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른 길

몽생미셸 가는 길 112화

by 오래된 타자기


길을 떠난다. 이번엔 활래즈(Falaise)다. 노르망디 공국과 영국, 이 두 왕국을 거느린 정복왕 기욤(윌리엄)이 태어난 곳이다. 사생아(바타르)라 불린 기욤이 태어나 자란 곳, 어린 시절부터 두 왕국을 꿈꾼 곳, 부왕이었던 로베르 르 마니피크가 젊은 나이에 객사하자 어렵사리 공국을 물려받은 곳, 그러나 경호대장의 반란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던 곳, 노르망디 공국에 이어 해이스팅스 전투에서 베섹스를 물리치고 영국마저 거머쥐었으나, 어린 나이에 도망친 마을을 살아생전 결코 다시 찾지 않은 곳, 그곳을 천 년이 지난 지금 21세기를 유영하고 있는 한 사내가 일부러 찾아 나선 것이다.


기욤이 태어나 자란 활래즈는 천천히 에둘러 가지 않아도 파리로부터 자동차로 3시간 거리다. 기욤 시대에 노르망디 공국의 수도였던 캉을 거치면 30분이 더 늘어난다. 그럼에도 나는 기어이 순조로운 길들을 놔두고 성녀 소화 데레사가 태어난 알랑송(Alençon)을 일부러 에둘러간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치는 국도와 지방 도로를 타고 4시간이 넘는 거리다.


알랑송을 거쳐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내를 위해서다. 내게 새로 깃든 작은 바람은 다름 아닌 매일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바치던 착한 영혼의 소유자인 아내에게 소화 데레사가 태어난 곳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창궐하여 변이를 일으키는 동안 나는 그저 하던 일을 전폐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살았다. 아내의 보살핌마저 없었다면, 책을 읽고 번역을 하고 글을 쓰고 간간이 그림을 그리며 소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일은 오로지 아내의 몫이었다. 외국에서, 그것도 어느 누구에게 의지할 데도 없는 타국에서 집안에 틀어박혀 3년을 보냈으니,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은 형언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제야 아내의 얼굴을 바로 보며 그녀의 보살핌을 되갚을 일을 떠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남편으로서 당연한 의무 같은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