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15화
이런저런 생각에 어느덧 알랑송에 도착한다. 도로 표지판이 반갑다. 소화 데레사 생가는 알랑송 도청 맞은편이다. 차의 진로방향을 도청 쪽으로 향하든 생가 쪽으로 향하든 한 방향이다. 오늘은 토요일, 예상대로 도청의 철문은 굳게 닫혀있다. 여행안내사무소가 아닌 다음에야 도청에 들를 일은 없을 테지만, 굳게 닫혀있는 철문을 보니 빈정 상하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어딘 가에서 경비원이 건물을 감시하고 있으리라. 20세기, 21세기에도 여전히 관공서 건물이 공공의 감옥이 된 것은 바로잡기가 어렵다.
그 감옥 같은 덩치 큰 건물 앞에 단아한 성녀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생가 바로 옆에는 건축 양식을 도저히 감 잡기 어려운 검소하고도 소박한 형태의 교회가 바로 붙어있다. 성녀 가족이 늘 미사 드리고 묵상하고 기도를 올리던 곳이다.
성녀의 아버지는 시계공이었다. 성녀의 어머니는 신심이 두터웠던 여성으로 레이스 사업에 일가견이 있어 결혼할 때까지 큰돈을 굴릴 정도로 사업수완도 대단했다. 전해오는 일화에 따르면, 노총각 노처녀가 될 때까지 두 남녀는 결혼하지 않고 말 그대로 죽도록 일만 했다.
그러던 중에 신심이 남달랐던 성녀의 어머니는 매일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아 미사에 참례하면서 기도하기를, 내 딸이 착하고 신심이 두터운 배필을 만나 성(聖) 가정을 이루게 해달라고 성모님께 기도드렸다. 그 기도가 이루어져 한 때 수사를 꿈꾸던 노총각을 만나 그녀가 그토록 정성을 다해 기도드린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두 남녀는 결혼식을 올리기에 이르고, 그 결실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막내딸로 소화 데레사를 낳았다.
생가는 성녀의 부모가 자수성가하여 번 돈으로 산 3층짜리 저택을 온전히 복원하여 <소화 데레사 기념관>으로 연중 개방하고 있다. 1, 2층 전시실에는 태어나서 리지외(Lisieux)로 이사 갈 때까지 소화 데레사의 유년시절의 흔적을 더듬고 있다.
불행하게도 성녀 어머니는 창창한 나이에 암에 걸려 명을 달리했다. 병든 아내를 살려보려고 성녀의 아버지는 온갖 방법을 다 강구했으나 성녀의 어머니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기적을 바라고 루르드(Lourdes)를 찾아갔지만, 기적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내가 죽자 성녀의 아버지는 모든 걸 정리하고 리지외로 이사한 후, 전 재산을 처분하여 수도원과 교회와 병원 및 요양원을 비롯하여 양로원에 기부하고, 불쌍한 이들을 끝까지 돌보다가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사이에 난 딸들은 모두 수녀가 되었다.
어린 성녀 역시 수녀가 된 언니들을 따라 그 힘들다는 가르멜(우리말로는 갈멜이라 부른다) 수녀원의 ‘맨발’의 수녀가 되었다. 그리고 가르멜 수녀원에서 정진하면서 젊은 나이에 폐렴에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고 말았다.
성녀의 일생에 대해선 리지외를 가야만 제대로 읽을 수 있다. 그곳에 소화 데레사 기념 성당이 있고 그녀의 생가 뷔쏘네가 있으며, 그녀가 죽을 때까지 몸담았던 가르멜 수녀원이 있기에 그곳을 직접 찾아가야만이 그녀의 영적인 생애를 온전히 감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