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14화
나는 그곳을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그것도 아내와 함께!
파리를 출발한 애마 피카소는 베르사유 인근 숲을 지나 드뢰(Dreux) 근방에서 12번 국도로 들어섰다. 길 끝에는 몽생미셸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행선지는 알랑송이다.
기욤의 시대에 반란이 끊이질 않던 알랑송, 그러나 역사책은 이 중세 도시가 백년전쟁 기간 동안에 영국 땅이 되었다가 다시 프랑스 왕국의 영토가 되었음을 일러주고, 이후 30년 동안 구교도와 신교도 간의 지칠 줄 모르는 살육이 자행된 종교전쟁의 한 축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격동과 변화를 거치면서 수 없는 전란을 치르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도시가 거의 파괴되는 지경에 처해 전후 복구사업을 통해서 겨우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던 곳임을 알려준다.
바로 이곳 알랑송에서 소화 데레사라 일컫는 성녀가 태어났다. 나는 그곳을 아내와 함께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힘을 빌려 다시 시작한 생을 그곳에서 설계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던 탓이다.
드뢰에서 알랑송으로 이어진 12번 국도는 이른바 초록길(La route verte)이라 불린다. 밋밋하다면 밋밋할 수도 있으나 시원하게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은 도심생활에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운다. 12번 국도는 오흔느(Orne) 지방의 페르슈(Perche) 자연공원 숲 인근을 돌아간다. 이때부터는 그야말로 지그재그 신나는 드라이브 코스다.
자동차로 길을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마저 날아가버린다. 가끔씩의 드라이브가 몸과 마음까지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건 이 때문만이 아니다. 시원한 들판을 달리다 보면 세상 오만 잡생각이 싹 가시는 쾌감마저 상승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차를 모는 사람들이면 다 생각하는 바겠으나 자동차는 속도다. 인간이 가만히 앉아 속도를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쾌감이 바로 자동차를 몰 때 찾아온다. 이보다 더 큰 쾌감은 비행기를 몰 때인 것만큼은 자명할 터, 하지만 나 같은 문외한이 그럴 일은 없을 테고 느릿느릿 그러면서도 국도상의 제한속도를 즐기며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처럼 이 마을 저 마을 기웃거리면서 가다 보면 세상사마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자동차는 인간을 닮았다. 인체공학적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이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더군다나 인간을 꼭 빼닮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만 제외하면. 그 때문에라도 지구상에서 자동차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2023년 올림픽이 1년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파리는 모든 자동차 길을 자전거 전용도로로 바꿀 태세다. 파리시장 이달고 여사는 아예 파리의 모든 도로에서 자동차를 없앨 기세다. 이젠 파리에 드라이브를 즐길 만한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지상에 차를 주차시킬 경우 어마어마한 과태료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파리 한복판에 차를 몰고 나오지 말라는 뜻일 테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도보로 다니라는 뜻일 것이다.
“자동차를 끌고 파리 시내로 들어오면
지옥의 맛을 보여주마!”
파리시의 허황된 구호만이 아니다. 그러니 밖으로 나돌 수밖에. 가만히 앉아 속도를 즐기고 싶은 취기가 들길을 가로지르는 길 위에서 화들짝 깰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초록길에서 간간이 마주치는 인가나 마을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복구하거나 새로 짓고 조성한 곳이 태반이다. 1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2차 세계대전은 전술 면에서 정반대 양상을 야기시켰다. 1차 세계대전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참호를 파고 두더지 작전을 펼치면서 방어에 치중하며 지연작전을 펼쳤다면, 2차 세계대전은 방어 대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상징하듯, 연합군의 신속하고도 민첩한 공격을 통하여 독일군의 궤멸이라는 사상 최대의 군사작전을 새로 수립했다. 이 연계선상에 인천상륙작전 또한 자리하고 있음은 너무도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 덕분에 대서양가 해안을 시작으로 파리에 이르는 노르망디 지방은 연합군의 포화에 쑥대밭이 되고, 인가와 마을들마저 모두 불타고 심지어는 마을이 사라지는 일도 속출했다. 독일군은 마을마다 튼튼한 돌로 지은 집들을 방패 삼아 연합군의 포화를 견딘 탓에 전투는 어쩔 수 없이 시가지 공방전으로 변모하고 그 탓에 건물 하나 집 한 채 멀쩡한 것이 없을 정도로 파괴되거나 전소되었다.
그 남은 흔적만으로 옛 것을 복구하고 새로 증축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중세시대 때 지어진 성당이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하며, 요새나 성채 또한 이를 피해 갈 수 없었기는 마찬가지다. 초록길에서 지나칠 뻔하다 번번이 마주치는 마을 한복판에 홀로 우뚝 서있는 교회들은 그처럼 애처롭게 전쟁의 참상을 전해주는 살아있는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천장은 날아갔지만, 돌을 쌓아 올린 벽체만큼은 어떠한 포화에도 허물어지지 않았으니, 옛 건축술이 고리타분한 고서 속에만 존재하는 인류의 재능과 기술만은 아니라는 점도 새겨봄 직하다. 모든 만물이 다 변화를 겪고 시대가 바뀌면 달라지지만(심지어 언론 매체까지도), 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 그것이 바로 박물관과 책 그리고 성당이다.
가끔씩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청하다 보면, 왜 프랑스 인들이 그들을 구해준 이들에게 지금도 감사를 되풀이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지옥 같은 전쟁으로부터 탈출을 도와주고 그것도 모자라 해방을 시켜준 이들에게 대한 감사는 세기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부족함이 없다.
이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노르망디 지역을 찾는 여행객 상당수가 연합군의 일원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한 군인의 가족들 혹은 그 후손들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을 여전히 따뜻하게 맞아주는 프랑스인들 또한 훈훈함을 잃지 않고 있음을 너무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전후에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복구하면서 마치 물난리 난 집을 청소하면서 하늘을 원망하듯 전쟁을 원망하면서도 프랑스 인들은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준 미군, 나아가 미국에 고마움을 느끼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나라를 찾은 후손들에게 나름대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기까지 하고 있다.
미국은 역사에 성조기만으로 남을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제국주의의 피 냄새에 길들여진 파시스트들을 물리친 자유민주주의의 탁월한 수호자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마찬가지다.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의 말을 빌지 않아도 ‘역사는 이념’이다. 역사적 인물들이 만들어 낸 사건들은 모두 이념화된 것들뿐이다. 20세기 인류가 이룬 역사는 끔찍이도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