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왕국을 꿈꾸다

몽생미셸 가는 길 120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정복왕 기욤이 태어난 활래즈 성채


11월의 해양성기후는 거칠다 못해 사납다. 여행을 하기엔 최악의 날씨다. 해 뜨는 날이 한 달에 열흘도 안 되는 절기여서인지 하루 종일 비바람만 서걱댄다. 그린란드의 차가운 공기와 멕시코만에서 날아드는 따뜻한 공기가 서로 충돌하는 탓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릴 때도 흔하디 흔하다.


프랑스인이 그랬던가? 11월은 망령의 계절이라고.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축일’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우기로 접어든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모든 성인의 축일(Toussaint)’이 ‘모든 악령 축일(Halloween Day)’로 둔갑한다.


나뭇잎은 서서히 잎을 떨구고 마치 죽음이 임박한 듯 앙상한 몸을 드러낸다. 이 철없이 하루 종일 짓궂게 내리는 비를 반가워하는 건 초가을에 들판에 뿌려진 밀과 사탕무 그리고 목초지에서 자라는 풀들뿐이다. 허공은 온통 비구름에 가려졌다 할지라도 들판만큼은 싱그러운 이 이율배반적 조화는 곧 뼈끝이 시려올 추위가 닥쳐와도 언젠가는 따뜻한 봄이 시작되리라는 강건하면서도 경건한 믿음에 기초해 있다. 그 믿음은 어찌 보면 저항에 가깝다. 저항의 몸짓이 애처로워도 들판만큼은 온통 초록빛이다.


아침을 건너뛰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와 빵 한 조각에 담긴 포만감에 간 밤의 노곤함을 덜 수 있으련만 새벽으로 향한 시각 급격히 하강한 기온에 쿨럭쿨럭 밤잠을 설치다 잠든 아침 10시, 부랴부랴 여행 보따리를 싸 들고 호텔 문을 나서야 하는 긴장감은 매번 나그네의 심정을 심란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은 가야 할 길이 있다. 길을 나서야 할 이유도 있다.


허공은 온통 잿빛, 차가운 빗방울이 타고 갈 차의 시동마저 얼어붙게 만든다. 비에 젖은 건물들이 비웃는 듯하다. 아니 조롱하는 것마냥 무심한 표정이다. 아침 대낮의 길목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마저 이제야말로 타고 다니는 차를 바꿔 타라는 신호처럼 들린다. 갈 길은 곧고 명확하지만, 의식만큼은 명료하지가 않다. 혼돈인지 무의식인지 모를 길 위에서 천 년 전 내가 만날 사내도 그처럼 서성거렸으리라.


에두른 길, 길 끝에 성이 있다. 성에 닿기까지의 우여곡절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렸다. 나는 단지 한 인간이 태어난 곳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곳은 의혹투성일 정도로 희미하고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게만 다가온다.





정복왕 기욤(윌리엄)이 태어난 활래즈에 당도한 때는 정오를 향한 시간이었다. 간간히 흩뿌리는 빗방울에 마을의 이정표 구실을 하는 파노라마 안내판 앞에서 정차하여 먼발치 중세 마을을 올려다본다. 비로소 그가 태어난 곳에 당도했음을 실감하는 순간 새 한 마리 가까이 날아왔다가 먼발치로 사라진다. 까마귀다! 노아의 방주에 등장하는 새!


중세마을인 활래즈는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앙트(Ante) 강줄기를 낀 바위산 절벽 끝에 걸터앉은 요새마을이다. 그렇듯 활래즈(Falaise)는 ‘절벽, 단애’란 뜻이다.


까마귀가 날아간 자리로 다시 차를 몰고 나아간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초입에 나타난 ‘성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들의 문’, 문 위에 걸터앉은 꼴롱바쥬 양식으로 지은 집채가 참으로 중세스럽다. 이 아름다움만으로 활래즈는 노르망디의 보석과도 같은 마을이 되었으리라.


수도사들의 문(Porte des Cordeliers). 꼬흐들리에(Cordeliers)란 이름은 근처에 있던 수도원 이름에서 따왔다.


차를 주차시키고 바라보니 정복왕 기욤의 기마상이 광장 한복판에 자리하고, 왼편 멀리로는 시청사가, 오른편으론 기욤이 태어난 성채로 들어가는 성문이 멀찌감치 물러나있다. 오른편 가까이엔 그 어느 곳보다도 더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매번 격렬하게 치러진 전쟁의 참화를 피해 갈 수 없었던 활래즈의 기구한 운명을 오롯이 전해주겠다는 투로 전쟁기념관(Le Mémorial de Falaise – La Guerre des Civils)마저 끼어들었다. 왼편 더 아래쪽으론 나무로 이은 천장이 아름다운 삼위일체 성당이 마치 버림받은 유적처럼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있고, 성당 뒤편으로 나있는 좁은 골목길은 마을 자체가 요새화되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할 만큼 좁고 어지럽게 나있다.


정복왕 기욤 광장(Place Guillaume-le-Conquérant) 주변. 왼쪽부터 삼위일체 성당, 정복왕 기욤 기마상, 시청사.
삼위일체 성당(Église de la Trinité)의 나무 천장


사진은 기대할 바가 못 된다. 하기는 사진을 찍자고 덤비면 못 찍으란 법도 없지만, 그보다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내가 태어난 성채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정복왕 기욤이 태어난 활래즈(Falaise) 성채 입구.


그가 태어나기 전인 9세기 견고한 성채를 자랑하던 활래즈 도성은 기욤 시대에 이르러 더 견고해졌다. 하지만 1204년 샤토 갸이야르 성이 함락되면서 활래즈마저도 필립 오귀스트의 손아귀에 떨어지자 노르망디 공국은 294년 만에 프랑스 왕국에 편입되고 말았다. 존엄왕 필립은 이 독수리 둥지 같은 견고하게 구축된 활래즈 성채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하여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건축물은 이념화된 역사에 입각하여 변형된 필립 오귀스트 시대의 동종(요새)이다. 하지만 저 동종 높이 휘날리는 깃발만큼은 기욤의 시대를 회상하게 만든다.


동종 꼭대기에 휘날리는 깃발은 바이킹의 피가 흐르는 기욤의 시대를 추억하고자 노르웨이 십자가에 노르망디 왕국을 상징하는 사자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성문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어딘가에서 그가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넓게 펼쳐진 잔디밭은 궁정 안뜰에 해당하고 그 한 편에 역사박물관이 세워져 동종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표소에 들어서니 비로소 고대하던 그가 환하게 방문객을 맞는다.


정복왕 기욤(윌리엄 1세)


21세기 한 나그네가 감격하여 어루만지는 눈길을 느꼈을까? 두 왕국을 꿈꿨으리만치 그는 건장한 용모에 다부진 체격이다. 아버지 로베르 르 마니피크를 닮아 강건하고, 어머니 아흘레뜨를 닮아 지혜로웠던 그는 노르망디 공국에 한하지 않고 저 바다 건너 선조들이 이미 정복한 바 있던 영국 땅을 거머쥐고자 꿈꿨다. 바이킹의 후손답게 그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왕국을 꿈꾼 것이리라. 역사는 이쯤에서 영웅을 미화한다. 그러나 그의 개인사는 너무도 보잘것없고, 그는 매일 밤마다 암살자들을 두려워하며 떨었다. 더군다나 가신들의 반란과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프랑스 왕국과 대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르망디 왕국의 생사를 걱정해야만 했다. 그가 두 왕국을 동시에 거느리게 된 것도 우연히 주어진 행운도 아닐뿐더러 천운에 따라 이루어진 것도 아닐 것이다. 사생아란 조롱과 멸시와 차별을 견디면서 왕국의 일인자가 되기까지 그는 수많은 적들과 전투를 치르며 스스로를 단련했을 따름이다. 그런 그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도성 안 성채에서.


동종 꼭대기에 휘날리는 붉은 깃발은 바이킹의 피가 흐르는 기욤의 시대를 추억하고자 노르웨이 십자가에 노르망디 왕국을 상징하는 사자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백합꽃송이가 아닌, 프랑스 왕국의 상징이 아닌, 노르망디와 노르웨이의 결합을 상징하는 깃발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프랑스인들의 역사적 관대함이라 해야 할지, 문화적 여유로움에서 기인한 발상일지를 놓고 따져보는 것은 무용한 일이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보면, 타인의 역사까지도 수용하는 이들의 노골적인 포용성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진 몰라도 노르망디의 역사는 소외되지 않았다. 노르망디 왕국의 역사 또한 소외당하지 않았다.


동종 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평화롭기만 하다. 인구 8천 명이 채 안 되는 이 조그만 마을이 역사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과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 태어난 곳이 틀림없는가 의아해질 따름이다. 소리 없이 흩뿌리는 11월 빗방울에 젖어드는 가옥들은 저물 무렵 벽난로에서 참나무 장작을 태우는 흰 연기를 굴뚝마다 쏟아낼 풍경을 상상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조화롭다. 성채 안의 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함성마저 조용한 울림처럼 싱그럽기만 하다. 이 모든 조화가 화합과 상생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저 뛰노는 아이들의 혈통이 바이킹이든, 골루아이든, 켈트든, 브르통이든, 노르망드이든 상관없다. 아이들은 오로지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국가 이념으로 무장한 또 다른 역사의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기욤이 태어난 성채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난다. 떠나는 길 위에 처음으로 햇살이 내리쬔다. 오랜만에 쬐는 햇빛, 11월엔 그마저도 고맙다.


성채에서 내려다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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