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18화
롤로(Rollo)란 명칭은 라틴어 이름이고 프랑스 어로는 롤롱(Rollon)이라 부른다. 이 건장하고 다부진 체격을 한 사내는 지금까지도 덴마크 인인지 노르웨이 사람인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프랑스 역사학자들은 롤로를 스칸디나비아 인으로 규정하는데 신중한 태도마저 보이고 있다.
어찌 됐든 롤로는 프랑스 대서양 북서쪽 연안 지역으로 그가 이끌고 있는 바이킹들과 함께 침투한다. ‘나타났다’란 표현이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때 동반한 여인이 포파(Popa)인데, 금발의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인에 대해서도 설왕설래할 정도로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이 여인이 덴마크 여자라는 의견과 롤로가 바이외를 점령했을 때 만난 베랑제흐 왕자의 딸이라는 설이 혼재한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롤로의 부인 포파는 롤로가 데리고 온 여자임이 틀림없지만, 훗날 노르망디 공국의 전기작가 뒤동 드 생 캉탱의 입장에서 보자면, 롤로의 부인은 노르망디 인, 즉 프랑스 원주민일 필요성이 대두되는 대목이다.
왜냐? 노르망디 공국은 결국 프랑스의 존엄왕 필립 오귀스트에 의해 프랑스 왕국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처럼 이념화된 것이다. 이념에 따라 역사는 사실과 다르게 각색될 수도 있다. 그래서 후세에는 이름 세 글자만 남게 된다. 거리이름, 도시이름, 지명 등, 그 이름들에는 이념화된 역사관만이 초라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롤로는 10세기에 무소불위를 떨치던 바이킹의 우두머리였다. 거의 모든 바이킹의 무리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그가 건설한 정착촌에서 노르망디 원주민들과 결혼하여 살 정도였다. 세느 강을 거슬러 파리까지 침공한 롤로를 두려워한 프랑크 왕 샤를이 서둘러 롤로와 맺은 평화조약이 바로 911년에 체결된 생 클레흐 상호불가침조약이다. 이때 롤로는 샤를의 권유를 받아들여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루앙 백작 작위를 수여했다. 이때의 세례명이 롤로, 바이킹의 우두머리 흐돌로프는 비로소 롤로가 된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노르망디 공국의 아버지가 된다. 그래서 그의 조각상이 당시 공국의 수도였던 루앙에 있는 것이며, 그의 무덤까지도 루앙 대성당에 안장된 것이다. 이후로 노르망디 공국은 294년간 노르망디 지역을 통치한다. 건국자 롤로는 긴 검을 찬 기욤(기욤 롱그에페)로 이어지고 다시 리샤르 1세와 2세로 이어져 노르망디 공국은 이웃한 프랑크 왕국과 대등하게 힘을 견줄만한 수준에까지 발전한다.
리샤르 2세는 수도를 훼깡으로 옮겼다. 이 해안가의 마을을 수도로 정한 것은 자신의 선조들인 스칸디나비아와 노르망디를 잇는 바닷길을 활짝 열어젖히고자 한 의도에서였다. 이 덕분에 훗날 정복왕 기욤이 영국을 정벌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을 착실히 다진 계기가 된 것이다. 리샤르 2세는 또한 베네딕도 수도사인 기욤 드 볼피아노를 훼깡으로 불러들여 선조들이 파괴한 기독교 문명의 재건에 박차를 가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에 몽생미셸 수도원 역시 번영을 구가한다.
성물함을 보기 위한 성지순례가 본격화한 것도 이 시기다. 몽생미셸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는 성물함을 보고자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몰려든 탓이다. 이처럼 리샤르 2세의 가장 큰 업적은 이웃한 나라인 프랑스 왕국과 우호에 입각한 평화관계를 유지하면서 선조들이 파괴한 기독교 문명을 재건한 데 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자면, 종교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으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세는 권력이 다름 아닌 기독교 문명에서 비롯되었다. 영성의 시대이었던 탓으로 모든 정치권력은 성직자들을 통해 좌지우지되던 때가 바로 이 시기다.
파괴된 것을 재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과 독일을 이에 견주어보자면, 이들 두 나라도 진정 자신들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참회하였기에 오늘날 경제선진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리샤르 2세가 진정으로 선조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참회하고 반성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훼깡의 고귀한 삼위일체성당에 부왕인 리샤르 1세와 함께 묻힐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파리의 에펠탑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몽생미셸 수도원도 결코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샤르 2세가 죽자 노르망디 공국의 바통은 당연히 리샤르 3세로 넘어가야 마땅했지만, 그것도 잠시 너그러운 로베르라 불리는 로베르 르 마니피크로 넘어간다. 리샤르 3세와 로베르, 이 두 사람은 부자관계가 아니라 형제다. 리샤르 3세가 카인이고 로베르 르 마니피크는 아벨인데, 리샤르 3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가신들이 리샤르 3세를 제거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아벨과 카인으로 순서가 뒤바뀐다. 하여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너그러운 로베르’라 알려진 로베르 르 마니피크다. 바로 이 사람이 정복왕 기욤의 아버지이며, 수도를 훼깡에서 저 내륙 깊숙이 시골구석 활래즈로 옮긴 장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