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왕 기욤이 태어난 활래즈

몽생미셸 가는 길 117화

by 오래된 타자기


예로부터 활래즈(Falaise)는 우(牛) 시장으로 유명했다. 노르망디 지방에서 키우는 소들은 다 이곳 기브레(Guibray) 장터로 팔려왔다. 그런 까닭에 활래즈 전통음식은 단연 쇠고기로 만든 요리가 으뜸이다. 노르망디가 꼭 해물요리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활래즈는 역사적으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파리의 좀 한다는 레스토랑엘 가보면, 내놓는 쇠고기가 거의 오브락(오베르뉴 지방) 산 쇠고기일 경우가 많다. 우리로 치면 공기 맑고 깨끗한 청정지역 대관령 목장에서 키운 쇠고기쯤 된다. 이런 선입견이 작용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토마호크라 불리는 꼬뜨 드 뵈프(Côte de boeuf) 1킬로그램 한 접시가 84유로, 우리 돈으로 12만 원이나 되어도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맛있게 먹게 된다.


하지만 부르고뉴 지방에 가면 포도밭 인근의 목초지에서 24시간 방목해 키운 쇠고기를 내놓는다. 일품이다! 레드 와인과 함께 시식하면, 고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이다. 지방마다 이렇듯 서로 자랑하다 보니 쇠고기 요리는 지천에서 ‘내 고장 유명 상품’으로 메뉴판에 내걸리고 값도 꽤 나간다.


활래즈에 가면 쇠고기를 꼭 먹어보자. 프랑스 쇠고기의 역사가 강력히 추천하는 메뉴, 강력한 쇠고기 불판이나 숯불에서 구운 꼬뜨 드 뵈프의 속살에서 우러나온 고기즙이 고소하게 입안을 맴돈다. 호텔방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떠올린 생각이다. 활래즈에 갈 꿈은 그래서 더 부풀어 오른다.


활래즈(Falaise) 기브레(Guibray) 장터의 옛 모습.



윌리엄이라고도 불린 기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든다. 프랑스인 세 사람이 공저자로 되어 있는 정복왕 기욤(윌리엄)에 관한 역사서다. 흥미진진한 것은 기욤(Guillaume)의 발자취를 따라 기행문 형식으로 서술해 간 한 영웅에 대한 기록물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인터넷상에 떠도는 기욤에 관한 이야기들은 대체로 영웅을 미화하는데 급급하다. 왜냐? 영국을 정복한 노르망디 공작 기욤(윌리엄)이 실존 인물이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보니 영웅에 관한 기록물들도 '역사적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이념에 따라 영웅의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기욤에 관한 중세 1차 고증 문헌들도 마찬가지다. 중세사가들의 입맛대로 기욤에 대한 평가가 중구난방일뿐더러 사가들이 제멋대로 재단한 영웅에 대한 허구들이 난무한다. 이견을 수용한 경우도 있지만, 철저히 이념에 묻혀버렸다. 이걸 우리는 이른바 ‘사관(史觀)’이라 일컫는다.


그렇기에 금석학이나 고고학이 중요하다. 옛 문자를 해석하고 그 뜻이 무슨 뜻인 줄 알아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말의 뜻을 모르고서야 어찌 역사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으랴. 놀라운 것은 유럽 특히 프랑스는 고고학뿐만 아니라 금석학 또한 세계 제일 수준을 자랑하는 탓에 여행을 할 때마다 팸플릿 같은 여행안내 사무소에서 발행한 관광안내 소책자나 카탈로그조차도 정확한 역사를 고증해 제작되었다. 나는 그와 같은 사실을 여행할 때마다 번번이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안내 소책자의 내용을 서술한 이가 그 방면 프랑스 최고의 권위자라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 금석학의 최고 권위자는 완당 김정희(추사라 부르기도 한다)이지만, 프랑스 제일의 금석학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의 돌기둥 오벨리스크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로제타석(대영박물관 소장)의 비문을 해독한 샹플뢰옹이다.


이야기하는 김에 더 나아가면, 『로마인 이야기』를 15년에 걸쳐 15권으로 완성한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이 태어난 일본에서 문학을 전공한 평범한 여성이고 작가였으나, 의사인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하고 나서는 금석학에 관심을 기울여 그 방대하고도 흥미로운 로마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작가로 거듭났다. 『로마인 이야기』를 자신이 예정한 대로 1년에 한 권씩 15년에 걸쳐 도합 15권으로 완성한 작가는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는데, 그중에 한 아이를 금석학을 전공하게 할 정도로 역사에 극진한 여인이었다. 더욱 대단한 건 금석학자가 될 아들을 위하여 어머니인 그녀가 먼저 역사학자가 된 것이다. 그녀가 써 내려간 로마 제국의 서사를 읽어보면, 그녀의 이런 지독하고도 치열한 역사관이 쉽게 읽힌다.


역사학자란 대학 역사학과 강단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교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조금 빗나간 이야기이긴 하나 내 경우를 들자면, 내 글이 혼자만의 넋두리가 아닌 것이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아내의 철저하고도 꼼꼼한 교정 덕분으로 글의 진정성을 어렵사리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렇듯 그녀는 남편을 위해 역사학자가 된 케이스다.


일단 이쯤 하기로 하고, 기욤은 프랑스어로 부르는 이름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영어식 이름인 윌리엄이란 명칭이 더 자주 쓰인다. 그는 노르망디인이다. 영국인이기도 하지만, 앵글로 잭슨 계가 아니란 뜻이다. 노르망디인이라 하여 모두 바이킹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바이킹의 혈통은 이미 그들의 선조 때 노르망디인의 혈통으로 바뀌었다. 노르망디인을 구체적으로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자면,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에서 살다가 남하하여 프랑스 대서양 북서쪽 연안으로 침투하여 노략질을 일삼다가 노르망디 원주민 여인들과 결혼하여 프랑스 땅에 정착한 바이킹들을 가리킨다.


다시 이야기하면, 노르망디인이라 함은 노르망디 지방에 정착한 바이킹들을 가리키는데, 바이킹의 혈통을 지닌 기욤의 선조들이 그렇듯 이미 노르망디 화한, 다시 말해 프랑스 기독교 문명에 흠씬 젖어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에 해당한다. 일찍이 갈리아(프랑스)인들이 로마 제국 문명을 받아들여 익힌 덕분에 로마 화 되었듯이 기욤의 선조들도 점차 기독교 문명에 젖어들면서 프랑스 화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도 프랑스인이라 말해도 되는 걸까? 아니다. 그건 아닌 것이 노르망디 왕국은 프랑스 왕국과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왕국이었다. 쉽게 생각해 버릇하면 프랑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 프랑스인이라고 단정하는 건 역사적 오류다. 간단히 요약해서 프랑스, 노르망디, 영국 이 세 왕국이 동시에 존재했다고 보면 이해가 더 수월할 것이다.


천 년 전, 아니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9세기에 이르면 바이킹들은 프랑크 왕국의 북서쪽 대서양 연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하는데, 프랑크 왕국은 파리를 중심으로 부르고뉴 지방을 포함하는 그리 크지 않은 영토를 거느리고 있었다.


샤를마뉴 대제 때는 거의 나폴레옹 제국에 버금가는 어마 무시한 영토를 자랑했지만, 샤를마뉴 대제의 두 아들 때문에 프랑크 왕국이 동 프랑크와 서 프랑크 둘로 쪼개지는 바람에 당시 프랑스에 해당하는 서 프랑크 왕국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져 파리와 부르고뉴 일대를 포함한 영토에 국한했다.


그 바람에 노르망디는 제대로 건사하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더군다나 노르망디 지방은 바이킹들이 약탈을 일삼아도 국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였을 뿐 아니라 설사 인근에 브르타뉴 공국이 위치해 있었다 할지라도 당시 최고의 해양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바이킹들이 마구잡이로 대서양 연안을 이리저리 휩쓸고 다녀도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었다.


프랑스 인들이 그저 팔짱만 낀 채 바다 쪽만 바라다보고 있을 때, 바이킹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대서양 북서쪽 연안을 비롯하여 세느 강 연안을 초토화시킨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세력을 떨쳤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무소불위의 세력을 지닌 바이킹들을 통합하고 그 우두머리로 우뚝 선 사내가 바로 기욤의 직계 선조라 할 수 있는 롤로란 이름을 지닌 사내였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