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의 오늘 38화
[대문 사진] 폴 셀랑
셀랑이 죽은 해에 메르뀌르 드 프랑스 출판사에서는 한 권의 불어로 된 시집을 간행했는데, 시집의 제목은 셀랑의 독일어 시집에 수록된 시 「고조(Strette)」란 시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이는 원래 독일어로 간행된 시집 『말의 철책(Sprachgitter)』에 수록된 어조(語調)가 점점 높아지는 현상을 뜻하는 ‘고조(Engführung)’ 라는 시 제목을 그대로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다.
1990년에 이르러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새롭게 한 권의 시집이 간행되었는데, 시집은 의미심장하게도 유형인(VERBRACHT)이란 제목의 시로 시작하고 있다. 셀랑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이 시는 프랑스어로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적절하면서도 탁월하게 묘파해 내고 있다. 또한 이 시는 그가 존재하는 당위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구들에게 하늘나라에서나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비통함까지도 노래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그건 나였노라, 나
그대들 가운데 나 있었노라, 내 거기
열려있는 채로, 존재했었노라
들을 수 있는, 나 그대들에게 경종을 들려주었노라, 그대들의 숨결을 타고
울리는, 그리고 나 여전히 경종인 채로 남아있노라, 허나
그대들 잠들어 있노라.
C’était moi, moi
j’étais entre vous, j’étais
ouvert, étais
audible, je vous donnai l’alarme, votre souffle
obéit, je le suis encore, mais
vous dormez.
『고조(Strette)』의 번역가인 장 대브(Jean Daive)는 그 자신 대단히 역량 있는 시인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이른바 대학에서 시를 강의하던 이들 또한 프랑스어로는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셀랑만의 독특한 방법에 기초한 시들을 나름대로 해석해 내고자 애쓴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헬레니즘에 심취해 있던 장 볼락(Jean Bollack)이나 독일 시 연구가인 장-피에르 르훼브르(Jean-Pierre Lefebvre), 장-마리 뱅클레흐(Jean-Marie Winckler) 그리고 셀랑을 처음 발견한 스위스 인이었던 존 E. 잭슨(John E. Jackson), 셀랑의 탁월한 비평가인 본느파와 셀랑의 열렬한 옹호자인 마르틴느 브로다(Martine Broda)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과는 달리 직접 시를 쓰면서 그들 나름대로 고유한 방법을 통하여 셀랑의 시를 체화해 낸 시인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앙드레 뒤 부쉐(André du Boucher)와 미셸 드귀이(Michel Deguy)를 꼽아야 할 것이다.
셀랑은 확실히 다른 시인들에게 있어서 훌륭한 모범일 수 있었다. 셀랑의 시를 가장 완벽하게 체현해 낸 장 디브의 ‘백색 시(poésie blanche)’나 시어에 있어서 ‘최소한(minimaliste)’의 사용을 적극 주장한 경우는 언뜻 보기에 셀랑이 추구한 형식에 근접해 간 독특한 특징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언어의 경제성에 입각해 쓴 시라든가, 각 시편마다 거의 부호를 사용치 않고 있는 점, 시와 산문이 서로 한데 뒤얽힌 채 파열하는 언어, 또한 시 전 편에 흐르는 긴장감” 등은 바로 그와 같은 특징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 열거한 특징들은 시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옹호자이면서 1982년의 『사라진 나그네(Voyageur absent)』와 1994년의 『대를 이어가는 인류(Hommes continuels)』의 탁월한 시인이었던 장 오르체(Jean Orizet)가 예시한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그는 이와 같은 특징들을 『프랑스 시선집(Anthologie de la poésie française)』의 주제에 적용하기도 했다.
앙드레 뒤 부쉐(André du Boucher)의 ‘침묵으로서의 말(parole en silence)’ 또한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공허한 열기 속에서(Dans la chaleur vacante)』(1959)로부터 『족쇄(Laisses)』(1979)로 이어지는 시적 경향이나 『눈(雪) 탓인 것과도 같은 불일치(…désaccordée comme par de la neige)』(1989)에서와 같은 시작품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시는 부단히 끊어진 것이거나 점점 협소해져 가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시인이 이를 두고 표명한 바, ‘어휘’가 “폭이 좁아져 가는” 현상이며,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이러한 시의 경향이야말로 셀랑에 대한 열렬한 숭배자인 앙드레 뒤 부쉐의 셀랑에 대한 독특한 몰입이라 여겨지기까지 한다.
미셸 드귀이(Michel Deguy)는 철자들을 조각조각 나누어 파편처럼 늘어놓기도 했는데, 낡은(vieux)이란 단어와 방뚜(Vantoux)란 단어를 v…x, VX로 축약하기도 하고(『교환방식(Donnant donnant)』, 1981), 『뒤 벨레의 무덤(Tombeau de Du Bellay)』(1973)에서는 여기저기 분산된 철차들(D, E, O, R, X)로 시 제목을 짓기도 했다.
이러한 철자 분해를 통한 시의 단편화 경향은 “두운법을 사용해야만 열리는 동굴 앞에서 알리바바가 움직이는 바위를 열기 위해 주문을 외우는 사라진 형식으로써의 글자 수수께끼”를 연상시키면서 셀랑을 보다 명백히 예시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기도 한다(『벙어리가 되었다(Es wird stumm)』). 여기서 철자들은 미셸 드귀이가 1985년에 간행한 시집 『묘와상(Gisants)』의 ‘성분(ingrédients)’을 이루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주목을 요하는 몇몇 시인들이 셀랑을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나 그러나 이들 모두가 셀랑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은 셀랑의 시가 지닌 한계성, 다시 말해 막다른 골목으로 보이는 시의 폐쇄성에 적잖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앙드레 뒤 부쉐는 다음과 같은 시를 통해 이미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경험한 바 있다.
갈라진 틈, 아니 : 갈기갈기 찢겨진 상처의 대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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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수가 없다, 그와 같은 표현을.
Déchirure, non : le jour de la déchir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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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uire, je ne peux pas.
앙드레 뒤 부쉐의 시는 똑 같은 언어로 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언어로 다가오는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이는 그가 같은 언어 속에 낯선 말과 부단히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말, 그것은 바로 언어 속에 내재해 있는 기이한 언어이다.” 그러나 그는 “행간 옆에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듯한 행간의” 다른 한 “부분”을 깨닫는데 실망하지 않는다(『여기 우리 둘이(Ici en deux)』, 1986). 말은 숨결로 차오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숨결이 멈춰진 채로 토해진다.
공기
정지된
숨을 몰아쉬듯.
Air
Arrêté
Comme repiré.
- 『바람에 쌓인 눈 더미(Congère)』, 1995
덧없는 일시적인 현상은 앙드레 뒤 부쉐의 시에서 더욱 명증해 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비록 “지구를 복사하려는” 야망과 그에 대한 확실한 기대를 품고 있다고는 하나 『시 철(綴) 묶음(Carnets)』(1990)은 모든 개념적인 어휘들과는 분명한 거리를 지니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마르틴느 브로다가 1975년부터 써온 자신의 시편들을 한데 모아 『멋진 날(Grand Jour)』(1994)이란 제목으로 펴낸 시집, 아니 정확히 말해 개인 앤솔로지라 할 수 있는 시편들에서 엿볼 수 있다. 그녀는 (꼭 그렇다고 보기 어렵지만) 셀랑의 후원자에 속한다. 셀랑의 시를 인용한 시 한 편을 그에게 헌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가 셀랑과 대비되는 것은 그녀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서정적인 전통’을 재발견한 데 따른 것이며, 이를 두고 그녀가 “동기들을 다시 손질하는 것”이라 정확히 꼬집어서 이야기했던 것에 있다. 그녀는 또한 사랑을 찬양하기도 했는데, 그럼으로써 그녀의 시는 1984년 7월의 시에서 산산조각이 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시하자면, 「천사의 기억을 위하여(À la mémoire d’un ange)」(이 시를 위해서는 좀 더 부연 설명할 필요가 있다. 릴케가 『오르페를 위한 소네트(Sonnets à l'Orphée)』를 쓴 것처럼 마르틴느 부로다는 『미추 로나를 기억하기 위해(in memoriam Mitsou Ronat)』와 같이 베라 욱카마 크눞과 알란 베르그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 즉 1935년에 작곡된 마농 그로피우스의 기억을 위한 「천사의 기억을 위하여」를 썼을 수도 있다)는 어휘들이 백지 여기저기에 산재함으로써 조각난 정서의 단층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이 셀랑 풍의 탁월한 시편 속에서 어휘는 분산된 채 각각의 철자들로서 파멸해 가지는 않지만, 철자는 애도의 시편 종결부에서 마치 돌무덤 위에 새겨진 묘비명처럼 대문자로 각자(刻字) 되어 있다. 또한 셀랑에게 헌정되고 있는 도끼(Axt)를 가리키는 표지가 내포되어 있는 시편에서는 페렉이 셀랑을 가리켜 역사의 도끼날이라 명명한 것 이상으로, “꽃은 피로 물든 거품에 대해 맞다라고 응수”하고 있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