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를 시작하며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화

by 오래된 타자기


때는 화창한 봄날 기차를 타고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 위치한 꼴마흐에서 파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꼴마흐(Colmar)는 뉴욕 리버티 섬에 우뚝 서있는 「자유의 상」을 조각한 바르톨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자그마하고 아담한 프랑스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꼴마흐는 이웃해 있는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와 함께 알자스 지방에서 아름다운 마을 가운데 한곳으로 손꼽힌다.


종교개혁의 시대에는 존 칼빈(프랑스인이었던 그는 프랑스에서 장 깔뱅으로 불린다)과 같은 자유사상을 지닌 프로테스탄트 선각자들이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지하로 숨어들어 종교개혁의 불길을 지핀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슈바이처 같은 인물이 태어나 활동했다는 것은 역사적 전환기에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봄날의 나른한 오후에 파리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자리를 확인하는데, 옆자리 차창 가에는 한 젊은 아가씨가 앉아있다. 앉을까 말까 다른 자리로 옮길까 망설이다 하는 수없이 지정된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앞만 쳐다보던 중 식당 칸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도 젊은 아가씨는 계속 책을 읽어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문고판 책을 살짝 훔쳐보니 제목이 ‘Le Temple noir’이라 되어있다. ‘추악한 템플’이라…….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라 그녀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책 재밌어요?”


그녀는 웃기만 했다.


몇 차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꼴마흐 대학에 재학 중인 불문학 전공자였다. 문학이 전공이니 소설책을 읽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두툼한 책은 재미가 없다면 결코 읽기 수월찮은 것도 사실이다.


파리로 돌아온 뒤, 한참 지난 어느날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올라 프낙(Fnac)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여 마음 다잡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어갔다. 제목이 템플 기사단이 아니라 ‘사악한 템플’인 것이 영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써 내려간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파리에서 ‘로마네스크의 세계’에 빠져들던 중이었다. 아득한 중세(中世)에 점차 빠져 들어가던 내게 읽을거리가 하나 생긴 셈이라 생각하고 소설책을 계속 붙들고 앉았다.


일단 이 책에 대한 평(評)은 보류하고 싶다. 다만 소설 속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밝히고 싶을 따름이다.


『검은 템플 기사단(Le Temple noir)』은 프랑스 두 명의 작가 자코메티와 라벤느가 펴낸 소설이다.


에리크 자코메티(Eric Giacometti)는 작가이자 연구 탐사 직 전문기자를 거쳐 일간지 <파리지엥/오쥬르뒤 앙 프랑스> 경제난 선임기자를 역임했다. 1990년대 말까지 자유석공조합(프리메이슨)에 관한 설문조사에 착수하여 이들의 실체를 밝혀내는데 주력하였다. 특히 코트다쥐르 지역에서의 자유석공조합의 활동 내역을 집중 탐구하여 그들에 대한 새로운 실체를 밝혀내기도 했다. 2016년에는 라르고 빈치(Largo Winch)의 모험담을 다룬 연재 장편 만화의 시나리오를 맡아 이 분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자크 라벤느(Jacques Ravenne) 역시 작가이며, 수사본 전문 연구가이자 자유석공조합인 프리메이슨에 관한 전문가로서 정기적으로 프리메이슨과 관련한 강연과 토론회에 참가해왔다. 형제애(박애)와 이에 결부된 비밀에 쌓인 제식이 빚은 환상에 대한 자각으로 형제애의 세계와 그 의식에 관하여 보다 치열한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이들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밝혀내고자 고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친구로 함께 활동하면서 상징성과 불가사의에 홀딱 빠져들어 문학적 협업 체계를 구축하였다. 2005년에 발표한 『밀교 제의(Le Rituel de l’ombre)』를 필두로 일련의 저작물들을 모두 주인공인 앙투안 마르카스라는 프리메이슨 단원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치열한 탐색과 수사로 스릴 넘치는 내용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그렇듯 프랑스 작가 두 사람이 펼치는 이중주는 기발하면서도 독자들을 주도면밀하게 비밀 결사체로 끌어들인다. 델꾸흐 출판사에서 펴낸 연재 장편 만화 시리즈는 프랑스에서만 2백만 부 이상이 팔렸으며,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에 이르기까지 17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성배의 제국(L’Empire du Graal)』을 JC 라테스 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 그들이 펴낸 소설들은 모두 포켓 문고에서 재 간행되었다.


참고적으로 포켓(Pocket) 문고판으로 간행된 두 사람 공동명의 저작물들은 다음과 같다.


『인 노미니(In Nomine)』

『밀교 제의(Le Rituel de l’ombre)』

『카사노바의 음모(Conjuration Casanova)』

『피의 형제(Le Frère de Sang)』

『암살자들의 십자가(La Croix des assassins)』

『묵시록(Apocalypse)』

『찬란한 지옥(Lux Ténèbrae)』

『제7의 템플 기사단(Le Septième Templier)』

『검은 템플 기사단(Le Templier noir)』

『시선의 왕국(Le Règne des Illuminati)』

『성배의 제국(L’Empire du Graal)』

『되찾은 상징(Le Symbole retrouvé)』


자크 라벤느의 저작으로는 『사드 후작의 일곱 개의 궤적(Les sept vies du marquis de Sade)』이 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남아있다면, 에리크 자코메티와 자크 라벤느 이 두 사람이 써 내려간 소설은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이 펴낸 『다빈치 코드』의 열풍에 기댄 프랑스식 템플 기사단에 관한 기발하고도 이상야릇한 글쓰기에 해당한다는 점일 것이다. 프랑스 독자들을 사로잡은 글쓰기란 점에서 이 소설은 분명 슈퍼마켓 한쪽 귀퉁이에서 판매하는 페이퍼북(Paper Book) 수준을 넘어선다.


나는 이런 유의 글을 처음 접하면서 상당히 당혹스러웠지만, 세상에 이런 유의 글도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의 영화관을 휘젓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프랑스의 서적 가판대들을 점유하고 있는 이런 유의 소설에 어떤 감정도 개입하지 않은 채, 순순히 글을 읽어가기란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음도 마저 덧붙여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