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우고 채우는 무인양품

by 브레첼리나

성인이 되어, 한국 나이로 스무 살이 되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힘으로 돈을 벌게 된 건 생활비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어서였다. 돈을 벌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을 사는 것이었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나 동대문에 가서 저렴한 옷들을 사기 시작했다. 오천 원, 만 원이면 충분히 예쁜 옷을 살 수 있었고, 그렇게 적은 돈으로 자주 옷을 사다 보니 구매 횟수도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1년쯤 지나면, 그 옷들이 예뻐 보이지도 않고 왠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쉽게 산 옷을 쉽게 버리고, 또다시 쉽게 새로운 옷을 샀다. 옷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진 돈이 많지 않다 보니 무엇을 살 때든 가격부터 보게 되었고, 고장 나면 그냥 또 사면 된다는 식의 소비 습관이 당연해져 있었다. 그 습관은 독일에 가서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물론 한국보다 물가가 높아 자주 사지는 못했지만, H&M이나 ZARA 같은 브랜드에서 별 고민 없이 옷을 사곤 했다. 독일에는 1년에 두 번 큰 세일 시즌이 있는데, 그 시기가 되면 더더욱 생각하지 않고 사이즈만 맞으면 옷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산 옷 중 다음 해까지 남는 건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독일에서 무인양품 매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도 무인양품을 잘 몰랐다.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본 듯했지만, 자세히 아는 브랜드는 아니었다. 그런데 상점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편하게 해주는 나무색, 시끄러운 도시 소음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음악, 피로를 풀어주는 듯한 은은한 향기까지. 그 공간은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곳에 진열된 물건들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깊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물건을 살 때, 그것이 필요한지, 마음에 드는지, 갖고 싶은지만을 생각해왔다. 그것도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불과했다. 하지만 무인양품에 있는 물건들은 달랐다. 단순한 디자인 속에 그 물건이 가지는 의미, 진정으로 필요한 물건인지,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물건인지, 지속 가능성은 있는지 등을 하나하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단순한 소비를 넘어서 내 삶의 방식과 연결된 물건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무인양품에서 처음 산 물건은 볼펜과 노트였다. 학교에 다니면서 떠오르는 작업 아이디어를 적어둘 노트가 필요했는데, 마침 잘 맞는 노트와 펜이 있었다. 집에 굴러다니는 볼펜은 많았지만, 정작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애착도 없었고 자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무인양품에서 산 작은 A5 줄 노트와 파란색 볼펜은 달랐다. 가방에 항상 넣고 다녔고, 그 노트에 아이디어와 영감을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는 순간이 즐거웠다. 마치 지금 떠오른 그 생각으로 좋은 작업을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무인양품에 맛을 들이고 나니, 다른 상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었다. 다른 곳에 진열된 물건들은 나를 그저 유혹할 뿐, 진정한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마치 그 물건들이 나를 ‘돈’으로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인양품에서 산 물건들은 단순한 만족을 넘어서, 나의 소비 철학과 라이프스타일까지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유행만 좇던 나,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집어 들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느새 물건을 살 때면 그 가치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내 삶에 적합한지,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물건인지부터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으로 소비에 접근하다 보니, 내 삶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조금씩 비우게 되었다. 그리고 꼭 비싸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것들로 삶을 채워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가진 것들을 소중히 바라볼 줄 알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가치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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