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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며 사랑하며 Sep 01. 2023

두통을 닮아버렸다

유전이라는 것은

40여 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나를 낳아준 아빠다.

정말 죽기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그런 아빠를 삼 남매 중에서 가장 많이 닮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빠를 닮은 구석이 더 많아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어릴 때부터 얼굴은 엄마를 쏙 빼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아빠를 닮은 곳이라고는 손과 발이 다였는데 왜 이제 와서 얼굴마저도 아빠 느낌이 나는 걸까.

얼굴을 요목조목 뜯어보면 아빠를 닮은 구석이 참 많다는게 새삼 느껴진다.

일단 눈을 제외하면 전부다 아빠를 닮았는데 코가 그렇고 가지런한 치아가 그렇고 얼굴형이 그렇다.

이런 내 얼굴은 왜 어릴 때는 엄마를 닮았다는 말만 듣고 컸을까?

아무튼 외모도 외모지만 성격도 아빠를 닮았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자칫 유약해 보이는 성격이지만 자존심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하다. 

아빠는 어릴 때 미술특기생으로 고등학교 입학을 권유받을 만큼 그림을 잘 그렸는데 그 솜씨를 진학에 쓰지 않고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의 몸에 문신을 새겨주는 것으로 풀어냈던 사람이다.

그런 나는 아빠를 닮은 것인지 몇 해 전 타투를 배우게 되었고 엄마는 그런 것까지 닮았냐며 징그럽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타투를 업으로 삼을 수 없는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지만 아빠와 나의 평행이론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빠는 두통에 꽤 오랜 시간 시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귀를 뚫고 귀걸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를 보며 왜 갑자기 귀를 뚫었냐고 물어봤다.

아빠는 지독한 두통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서 듣기로 혈자리를 맞춰 귀를 뚫으면 두통이 가신다는 말을 들어서라며. 실제로 아빠는 게보린을 달고 살았다. 귀를 뚫고 난 후에도 아빠의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그런 아빠의 두통을 닮아버렸다. 나는 10대 때부터 편두통에 시달렸고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마침 사무실에는 두통약이 똑 떨어져서 없다. 얼른 집에 가서 두통약을 먹고 싶다.


아빠는 불면증도 심했다. 어릴 때라서 나는 기억이 없지만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아빠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어렵게 잠에 들어도 자다가 깨서 눈을 멀뚱멀뚱 뜨고 그대로 밤을 새웠다고 한다. 아빠는 안 그래도 매일 먹던 술의 양이 불면증 때문에 더 늘었을 것이다. 술이라도 마시면 술에 취해 잠들 수 있었으니까. 

그런 아빠의 불면증까지도 나는 닮아버렸다. 

극심한 불면증에 정신과를 찾아 약을 처방받아 오랜 기간 먹었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의사도 그런 나를 어려워했다. 약을 먹다가 이것은 약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약을 끊었다. 

엄마는 말했다. 너는 아빠를 닮아서 어쩔 수 없다고.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답할 수 있다.

바로 나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군 아빠다.

그래서 아빠와 절연한 지 오래인데 천륜은 끊어도 유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안 보고 살아도 나는 나를 보며 매일 아빠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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