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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본 Jun 29. 2023

나는 어려서 돈 맛을 알았다

2화. 아르바이트 자립기

나는 우리 집 막내다. 할머니와 장애인 삼촌, 고모 3명, 부모님과 4명의 딸로 구성된 우리는 11명이다. 대가족은 가난의 상징처럼 느껴져서 매년 3월에 하는 가구 조사가 너무 싫었다. 고소한 굴비를 먹기 위해서는 고도의 눈치작전을 펼쳐야 했는데 매끼 식사가 전쟁이었다. 어느날은 외동딸인 친구 집에 갔다. 고기는 물론, 바나나도 혼자 실컷 먹고, 새 옷과 학용품까지 넘치는 걸 보니 내심 부러웠지만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난 다음 생은 꼭 외동딸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갖고 싶은 건 스스로 갖겠다는 야무진 결심도 했다.     


중학교 연합고사가 끝난 뒤, 당시 유행했던 워크맨을 사기 위해 돌솥비빔밥 전문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돌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워 드는 게 버거웠는데, 티 내면 잘릴까 봐 거뜬히 드는 척했다. 메뉴를 추천해달라는 손님의 물음에는 추운 겨울에도 한결같이 “메밀 소바가 맛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방학 내내 일하고 워크맨을 손에 넣었다. 돈 버는 것에 대한 좋은 추억이다.     


대학교 1학년 방학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했다.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소동이 벌어졌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에요? 스테이크를 보세요. 벌레가 있잖아요.” 손님이 소리치고 있었다. 화가 난 동료는 거의 다 먹어놓고 무슨 소리냐며 항의하고 있었고 손님은 계산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긴 스테이크는 거의 다 먹어 남은 건 한 조각뿐 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나는 손님에게 가서 정중히 말씀드렸다. “저희 레스토랑 부주의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계산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으시다면 음식을 다시 준비해 드려도 될까요?” 사실 그 메뉴는 사흘 치 내 급여였지만 내가 메꿀 심산이었다. 


얼마 뒤 사장님은 시급을 2배로 올려주셨다. 덕분에 레스토랑은 매년 방학마다 든든한 수입원이 되었다. 내 선택에 믿음을 준 첫 번째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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