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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의 비법

by Ander숙

내가 만든 음식 중에 온 가족이 맛있게 먹는 음식은 당연코 '미역국'이다. 미역국은 요리법이 쉬워서 좋다. 불린 미역의 물기를 쭉 짜낸 후, 냄비에 기름을 둘러 미역을 한 번 볶아준다. 그리고 물을 넣고 푹 끓이면 된다. 이것이 미역국의 기초라면 그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응용이고 선택이다.


처음부터 미역국을 잘 끓이진 못했다. 교환학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살 때, 종종 미역국을 끓였지만 정말 맛이 없었다. 미역과 국이 따로 놀고 깊은 맛이 안 났다. 그럴 땐 그리운 한국, 나의 고향을 떠올리며 고향의 맛 다시다를 한 숟가락 넣었다. 그러면 다시다는 MSG가 아닌 타임머신 혹은 순간이동장치가 된다. 유럽에 있는 동안 다시다에게 참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미역국을 끓여 흰쌀밥과 먹자, 이탈리아인인 내 룸메 안또니에따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몇 번 권한 끝에 안또니에따도 한 숟가락을 먹었는데 훌륭한 스프라고 말해주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미역국은 보기에 좀 이상할지 몰라도 보편적인 맛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괜찮을 것 같다.


맛있는 미역국의 비법은 많이, 오래 끓이는 것이다. 최소 8인분 정도 되는 양을 한 번에 오래도록 끓여야 미역이 부드러워지고 깊은 맛이 난다. 유럽에서 맛있는 미역국을 끓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내가 먹을 만큼의 양만 얼른 만들어 먹었으니 물에 빠진 미역국 같은 맛만 날 뿐이었다. 이런 미역국의 비법을 알게 된 것은 자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해 나는 언제나 어른들 국, 아이들 국을 따로 끓이거나 아이들 국을 먼저 몇 국자 덜어놓고 그다음에 매운 고추나 양념을 넣어 어른들 국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미역국은 맵게 먹는 일이 없으니 한 냄비로도 온 가족이 잘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메뉴이다. 그래서 다른 국보다는 자주 끓이게 되었다.


내가 미역국을 유별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은 출산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출산 후 조리원에서 매끼 미역국을 먹게 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끔찍이 싫어하겠지만 나는 매 끼니마다 맛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미역국이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소고기, 가자미, 홍합, 참치, 황태, 꽃게 등 모두 미역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다진 마늘을 넣고 안 넣고에 따라 풍미가 달라진다. 들깨가루는 미역국의 치트키이다. 뭔가 한 가지 아쉬운 맛이 날 때는 들깨가루를 넣으면 어떤 틈이든 채워진다. 미역을 볶은 기름이 들기름이냐 참기름이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그렇게 조리원에서 하루 3끼 14일 동안 42가지 종류의 미역국을 도장 깨기 하듯 맛있게 먹었다. 난 조리원 퇴소 후에도 1달 정도 더 미역국을 먹었다. 출산 선물로 받은 미역 한 뭇이 거의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맛있게 미역을 먹은 덕에 지금 미역국을 잘 끓이게 된 것 인지도 모른다.


결국 어떤 음식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음식을 내가 좋아해야 하고, 자주 만들어 보아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봐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요즘 나는 그림책방을 하나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곳을 구심점으로 삼아 막연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실현시키고자 하는 소망이 생겼다. 이런 소망이 현실이 되게 할 방법은 지금 뭐라도 몸을 움직여해 보는 것뿐일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미역국을 한 냄비 끓여놓고 오늘은 길을 한 번 나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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