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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코로나

by 수키 Mar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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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은 짧은 음절만큼이나 짧디 짧게 스쳐 지나간다. 낮기온이 많이 풀리면서 오늘은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러 놀이터로 나갔다. 따뜻해진 날씨 덕에 아이들이 친구들도 많이 나와있어 신나게 놀다 들어왔다. 화요일에는 눈까지 내려 봄은 언제 오려나 싶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거짓말처럼 따뜻해지는 걸 보니 짧은 봄이 시동을 거나 보다 싶다. 어서 빨리 진짜 봄, 벚꽃 피는 봄이 오면 좋겠다.


봄 하면 역시 벚꽃이다. 연분홍 벚꽃길을 걸으며 산책을 하면 그야말로 봄이로구나! 하는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온다. 해마다 보아도 질리지 않고 아쉽기만 한 봄나들이다. 벚꽃은 유난히도 짧게 피었다 가버린다. 벚꽃이 지고 나면 어느새 여름이 온 것 같다. 연분홍 꽃잎이 머물렀던 자리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잎은 짙고 무성해진다. 초록빛은 여름내 시들지 않지만 분홍빛은 살랑이는 봄바람에도 눈처럼 흩날리고, 온기 머금은 봄비에도 속절없이 떨어지고 말아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애틋하게 만든다.


그 해 봄엔 벚꽃이 언제 피었는지, 또 언제 졌는지도 모른다. 2021년 4월 무렵, 코로나로 아직도 모두가 우왕좌왕하던 때였다. 그때 난 딱 두 가지 바람이 있었다. 코로나에 걸린다면, 온 가족이 동시에 걸리거나 나 혼자만 걸리기를. 부디 아이들이 순서대로 걸리지 않기를. 한 명씩 코로나에 걸린다면 어떻게 휴가를 써야 할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아이가 아픈 것보다 휴가를 더 걱정해야 하는 비정한 엄마였다. 코로나로 인해 휴가를 길게 쓰는 동료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기 때문에 난 미리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의 바람대로 우리 네 식구는 동시에 코로나에 걸렸다. 병원에서 돌아온 그 길로 우리 가족은 집안에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항상 아이들과 남편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갖게 될 줄이야. 그리고 그것은 고통의 서막이었다. 아픈 몸을 일으켜 삼시 세 끼를 차려 주고, 놀아 주고, 병간호도 해주고 퇴근 없는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또 그 와중에 남편은 왜 혼자만 멀쩡한지. 얄미웠다. 그 해 봄은 미웠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직원을 배려해주지 않는 회사도 미웠고, 혼자만 건강한 남편도 미웠고, 모처럼 가족과 함께 있을 있는 시간을 사랑하지 못하는 나도 미웠다. 그렇게 4월의 봄을 왔는지도 갔는지도 모른 우는 마음으로 보냈다.


다시 또 봄이 오고 있다. 자주 가던 벚꽃길 쪽을 가보니 꽃망울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오늘 같은 날씨가 며칠만 계속되어도 여기저기 팝콘 터지 듯 꽃망울이 터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놓치지 않고 그 봄을 만끽하러 나가야겠다. 벚꽃이 드리운 길을 걸으며 붕붕 거리는 꿀벌의 소리와 벚꽃 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한 꽃내음을 더 깊이 새겨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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