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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휴 May 03. 2022

스물다섯 스물하나 #3.

(feat. 2521)

여기서부턴 나의 추측, 즉 뇌피셜도 섞여있음을 밝힌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스물다섯스물하나>드라마에 열광했고, 열광한 만큼 둘이 헤어지는 결말에 분노했으며 인생드라마일뻔 했던 드라마가 망작이 되었다고 말했다. 몇몇은 작가에게 너무 분노한 나머지 앞으로 그 작가 드라마는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나 역시 몰아봤으니 그렇지 일주일마다 기다리며 과몰입했다면 똑같은 반응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대체 작가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5명 중 나희도, 백이진, 지승완은 상당히 중성적인 이름이다. 그 이름들은 여자든 남자든 누구에게 갖다붙여도 절대 이상하지 않을 이름들이고 성도 역시 특이하다. 문지웅과 고유림은 누가 들어도 남자/여자 이름처럼 보이지만 그들 역시 성이 특이하다. 하다못해 나희도의 엄마 신재경, 코치 양찬미까지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흔한 김씨, 이씨,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리고 작가는 초반부터 나희도의 딸이 백이진의 딸이 아님을 강조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였다. (나희도의 딸은 김민채) 초반부터 나오는 힌트덕에 사람들은 그렇다면 대체 누가 나희도 남편인지 찾기위해 골몰했으나 16부작 끝까지 그의 모습이나 단서는 나오지 않았고 그저 나희도와 백이진의 사랑만 아름답게 그려졌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속았다'는 느낌과 함께 기만당했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심취했던 둘이 헤어졌다면 -게다가 그 헤어진 이유조차 납득하기 어려움- 더 멋진 사랑을 했어야 했는데, 나희도 주변에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다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펜싱만 하는 국가대표인 그녀가 백이진말고 또 어디서 그런 운명같은 사랑을 만나겠는가?!)

내 생각에 작가는 살다보면 본인의 선택이 아닌, 피치 못하게 사회(IMF와 911테러 등)에 의해서 강요받는 선택이 있다는 걸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초반에는 그런게 꽤 잘 드러나서 보통의 경우라면 마주치거나 사귈 일이 없었을 것 같은 백이진과 나희도는 만났고, 우정인지 무지갠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나희도는 전형적인 FP성향이었고 백이진은 PJ혹은 TJ로 보인다. 뭐든지 생각을 오래하기 보다는 감정을 중시하고 행동파였던 희도는, 생각이 많아 결정을 잘 하지 못하는 이진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백이진은 약간 회피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의 희도는 상당히 통통튀는 종잡을 수 없는 유형의 아이였는데 바쁜 엄마의 부재속에서 자신을 응원해주고 지지해 줄 사람을 필요로 했다. (그 수많은 경기에 부모가 한번도 관람을 오지않은 경우는 아마 드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이 드라마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음) 이진이 스포츠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엄마가 주지못하는 응원과 지지를 희도에게 보내줌으로써 그들의 관계는 굳건했는데, 고유림의 귀화건으로 충격을 받은 이진은 그만 그들관계의 핵심Key였던 스포츠국 근무를 버리고 사회부로 자리를 옮긴다. 드라마에서 그 이후 이진이 바빠진 것만 설명하고 희도에게 (정신적인)도움을 주지 못하는 장면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던 건 정말로 아쉬운 부분! 게다가 희도의 딸인 민채가 적절한 부분에서 화자역할을 하며 (갑자기 달콩이를 만났다던가 하는 장면! 거기서 화자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깨알재미를 주었는데 정작 시청자들이 답답한 부분인 마지막 부분에서는 말도 안되는 다이어리의 분실로 인해 화자를 하지못함) 시청자들의 궁금증, 혹은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역할을 했었는데 솔직히 '다이어리 분실'사건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작가가 제일 잘못한 부분은 바로 '희도를 결혼시킨 것'이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 40대초반(나희도의 나이는 81년생으로 나옴)이 인생을 다 살고 마치 옛사랑을 회고 혹은 추억하는 것은 지금 세대와는 전혀 맞지가 않는다. 희도랑 이진이 헤어지기 위해서는 둘이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서 (희도는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엄마의 부재로 인해 가정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빨리 가정을 꾸리고 싶어했다던가... 반면 이진은 가장으로써의 책임감, 그리고 가족들을 모아 다시 살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결혼을 빨리 할 수 없었다던가....등등) 헤어져야 했던게 보다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드라마에서 전혀 다루지 않아놓고 갑자기 14회엔딩에서 뜬금없이 희도를 결혼시키고, 게다가 매력덩어리에 올림픽 3연속 금메달을 딴 펜싱여제를 그저 발레하는 딸을 뒷바라지하는 보통 아줌마로 만들어 버렸으니 현실의 희도에게 사람들이 전혀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일견 당연하다. 


나희도 정도의 레벨이라면 펜싱꿈나무를 키우지 않고 그저 목공아뜰리에(아니. 그리고 왜 아뜰리에 이름이 대체 2521인가? 민채가 이걸 물어봤어야 함)를 운영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에 가까운 재능낭비이다. 중년 나희도 역할을 맡은 김소현은 얼핏보면 김태리와 얼굴이 비슷해 보이지만 목소리톤이 너무 달라서 감정이입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고 원래 갖고있는 이미지가 우아하다보니 약간 말괄량이에 가까운 20대 나희도와는 너무 달랐다. 얼굴이 안 닮았더라도 목소리가 비슷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텐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며, 어색한 연기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화면에서 펄펄 뛰어놀던 나희도가 40대가 되어서는 작은 어항에 갇힌 느낌임) 꼭 둘의 이별을 그리고 싶었다면 작가는 나희도를 결혼시키지 말고 헤어지게 하되 (20대에는 아주 사소한 일로도 헤어질 수 있다. 아마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여러 우여곡절끝에 다시 만나는 것으로 그렸어야 한다. 아니면 911테러로 갑자기 뉴욕에 간 이진이 약까지 먹으며 고뇌를 느끼는 장면을 그리지 말고, 막상 뉴욕에 가보니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UBS의 고위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파원생활이 필요하며 조금 더 돈을 빠르게 모으겠다는 야심(?)이라도 보여줬어야 한다. 드라마를 보다보니 도대체! 왜! (신경안정제같은 약까지 먹으면서 괴로워하던) 백이진이 뉴욕특파원을 자원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또 뉴욕에 가기로 결정할때 왜 희도한테 한마디 상의도 안한건지 그것도 이해하기 힘들고, 또 뉴욕에 가면서도 어떻게 자신들의 연애는 굳건할 것이라고 믿었는지 그 부분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고유림이 러시아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그토록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게 일처리를 했는지 의문이며 귀국시 공항에서 빨간 캐리어가 뒤바뀌는 우연은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사실 이 드라마에는 너무 많은 (우연을 가장한) 마주침이 많다. 그저 한 동네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마주치고, 어쩌다보니 중요한 말을 다 엿들으며 집이 가까우니 집 앞에서 기다리면 그만이다. (작가가 정말 성장하려면 이 '우연'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으려면 최소한 희도가 50대나 60대정도는 되었어야 하며 5인방의 첫 여행이었던 포항바다여행이 기억안난다고 말했던 것 역시 무리수가 있었다. (정말 기억이 안나는 것이라면 치매를 의심해야 함) 

막판에 뒷심부족으로 드라마를 말아먹은 작가와는 다르게 이 드라마 완성도의 8할은 연출진과 음향팀에 있다고 봐야한다. 많은 실력있는 연출진이 대한민국에는 많지만 이 드라마의 디테일(특히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장면전환과 깨알같은 패션아이템들. 게다가 90년대에 딱 인기있었을 것 같은 문지웅의 얼굴-정말 전형적인 90년대 미남형ㅎㅎ)은 거의 <응답하라>연출진 수준이었고, 특히 음악이 좋았다. 적재적소의 OST도 좋았지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않은 장면과 음악의 조화도 참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한 나희도의 엄마로 나온 배우분(진짜 앵커를 캐스팅한 듯한)은 김태리와 갈등상황이 많았는데 딸에게 전혀 밀리지않는 연기와 딕션을 보여주어 깜짝 놀랐다. 게다가 고유림역을 맡은 배우는 아이돌이라고 하던데 그녀의 연기가 안 받쳐줬다면 2521은 애시당초 망하기 딱 좋은 드라마였다. (이 정도 연기라면 아이돌이든 배우든 상관없음) 김태리를 중심으로 가장 많이 엮이는 3명이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이 드라마를 더욱 빛나게 했다. 그러나 잘 나가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길을 잃었고 특히 16회에 나희도의 나레이션 중 '사랑과 우정을 모두 가질 수 있을거라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는 말은 정말 말이 안되는게 바로옆에 사랑+우정+성공을 모두 잡은 유림과 지웅커플이 있지않은가!!! 그들은 강력한 남사친/여사친 장애물도 뚫었고, 첫사랑의 저주도 뚫었고, 이혼가정이라 발생할 수 있었던 부모님의 반대도 뚫었고, 심지어 롱디커플의 장애도 극복하며 결혼에 골인한다. 그런데 그들보다 한참 조건이 좋았던 희도와 이진커플은 왜 안되는가?! 이것은 그저 작가라는 장애물(어떻게든 둘을 결별시키고 말겠다는)을 도저히 뛰어넘을 수 있는 캐릭터의 한계일 뿐이다. 물론 작가는 비난을 피하기위해 (늘 변화무쌍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희도가 먼저 이별을 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자 했지만 희도는 별난 행동을 많이 하긴해도 참을성과 집념이 강한 아이였다. (희도가 유림을 대하던 행동을 상기해보라!) 그런데 단지 그토록 사랑했던 첫사랑이 알고보니 엄마랑 비슷한 사람이라 미래를 저당잡히고 싶지않아 이별이라....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럴수도 있겠지. 어떤 사람은 그렇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작가는 불특정 다수인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쓰는 사람이므로 앞으로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길 소망한다. 이대로 사장되기에는 작가의 섬세한 글솜씨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가 아쉽고 그 유명한 김은숙 작가조차 <파라의 연인>을 말아먹은 후에 더 훌륭한 작가로 성장했으니. 앞으로 작가님의 선전을 기원한다!


나는 그래도 2521드라마가 최악의 결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더 최악의 드라마들이 있으므로. 그 중 넘사벽은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고, 주변 사람들까지 다 죽여가며 본인은 게임안에 갇힌 <아브라함 궁전의 추억>(진짜 이 드라마 작가 작품은 향후 안 볼 예정임). 썸이란 썸은 황정음이랑 다 타놓고 나중에 진짜 사랑은 너(신세경)였다며 비오는 날 갑자기 횡천길로 간 <거침없이 하이킥>, '애기야 가자' '이 안에 너 있다'등의 명대사로 대한민국 여심이란 여심은 죄다 흔들어놓고 알고보니 이 모든게 꿈이었다는 한 장면으로 마무리했던 <파리의 연인>등.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광적으로 '해피엔딩'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인데, 아마도 우울한 현실을 탈피하고 싶어서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많고 (새드엔딩일 경우 그동안 드라마 본 시간이 아깝다고 하는 사람이 많음) 배우들 역시 해피엔딩 드라마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개성이 강한 작가들은 '해피엔딩'에 대한 반감이 큰 편인데, 이 경험이 권도은 작가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어서 향후 더 훌륭한 작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결정적인 순간을 코믹으로 버무리는 재주가 참 비상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결말이 너무 아쉬운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보시면서 위안을 삼으시길요.... 저 역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백이진♡나희도 부부, TMI 인터뷰 "10년뒤에도 함께..” - 공간 (postyp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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