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들들에게서 삥(?)을 뜯는 재미가 있다. 물건 귀한 줄 모르고 돈 귀한 줄도 모르고 클까 봐 저금통에 모아둔 돈을 여러 가지 명목으로 뺐곤 한다. 돈이 나갈 때마다 아까운 것도 알고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도 알게 하려는 의도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이지만 경제관념은 어릴 때부터 잡아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똑같이 가르쳤어도 큰 애는 우리 부부를 닮아 타고난 짠돌이다. 웬만해서는 저금통 돈을 안 건드린다. 둘째는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야만 한다. 둘이 같이 레고 대여점에 가도 첫째는 추가 비용이 있는 레고는 절대 대여를 안 한다. 편의점에 가도 엄마가 사줄 때는 마음껏 고르지만 각자 용돈으로 사 먹으라고 하면 수십 번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겨우 하나 사기도 하고 아예 안 사기도 한다. 둘째는 고민하는 형아 옆에서 내가 돈 줄게!라고 호기롭게 외친다.
침대에서 점프하지 말라고 이미 여러 번 말했는데 둘째가 또 침대에서 바운싱 삼매경이다. 결국 태블릿이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 액정에 금이 갔다. 그렇잖아도 날 닮아 매일 사고를 치는 녀석이 이번에는 뛰지 말라는 엄마 말까지 어기고 뛰었으니 정말 혼나야겠다. 태블릿 값 80만 원을 물어내라고 했다. 아빠 물건인데 왜 엄마가 그러냐고 항변이다. 원래 엄마껀데 엄마는 회사에서 태블릿을 받았기 때문에 아빠에게 빌려준 거라고 했다. 그럼 엄마가 아빠를 빌려줘서 여기에 놓게 하지 말았어야지요 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펼친다.
아빠까지 합세해서 태블릿 값을 물어내라며 저금통 돈 다 써도 모자랄 텐데 어쩔 거냐고 하자 눈물이 글썽글썽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남편이 살펴보니 다행히 강화유리 필름만 금이 가고 액정은 멀쩡한 것 같단다. 강화 유리 필름이 얼마 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필름값 3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래도 억울한지 눈물로 항변한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에 쓸 때는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쓰는 둘째도 생기는 것 없이 돈만 나가는 경험은 역시 싫은가 보다.
동생이 우는 모습을 보던 첫째가 갑자기 자기 저금통에서 만 5천 원을 꺼내와 엄마에게 줬다. 동생이 불쌍하다고 반은 자기가 내주겠단다.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놀랐다.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레고 신제품이 추가비 2만 원이라는 말에 꾹 참고 결국 대여하지 않았던 첫째였는데 동생 눈물에 이렇게 약해진다. 뭐든지 착한 일 하나라도 하면 갖은 생색과 자랑과 애교를 떨며 반복 칭찬을 얻어내려는 둘째와 달리 첫째는 그야말로 상남자다. 감동해서 호들갑인 엄마에게 별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며칠 전 삐끗했던 오른쪽 허리가 연휴 기간 동안 쉬면서 거의 완치되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겨우 할 수 있게 되자마자 둘째가 또 사고를 쳤다. 물을 흘렸으면 닦거나 엄마에게 말했어야 하는데 그냥 방치해 둔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엄마, 둘째만큼이나 사고를 잘 치고 잘 넘어지는 엄마가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이젠 양쪽 허리가 다 뻐근하고 묵직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처음 오른쪽 허리를 다쳤을 때처럼 날카로운 통증은 아니었지만 겨우 겨우 회복됐는데 더 나빠질까 봐 걱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둘째에게 흘린 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약값으로 만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엄마의 클래스. 그건 엄마가 더 조심했었어야지요 라며 적반하장인 둘째의 클래스.
침대에 누워 끙끙대고 있는데 첫째가 오더니 조용히 만원을 내밀며 약을 사란다. 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네가 약값을 내냐고 했더니 또 별 말없이 괜찮단다. 아프지 말란다.
주말이라 근처 약국들은 문을 닫았지만 저녁 자전거 타기를 할 생각이었던 남편이 첫째에게 자전거 타고 오면서 약국을 찾아보자고 한다. 형아의 그런 모습을 보면 깨닫는 것도 있고 배우는 것도 있어야 할 텐데 둘째는 뻔뻔하게 나는 힘들어서 자전거도 안 탈 거고 엄마에게 약값을 줄 생각도 없음을 더욱 분명히 했다. 저 녀석은 대체 왜 날 닮은 거야.
자전거 타고 돌아온 큰 아들이 파스를 내밀었다. 쿨팩인데 따뜻하다.
지금 한순간 느끼는 입의 즐거움, 놀이의 즐거움은 참고 절제할 줄 알면서 동생과 엄마를 위해서는 흔쾌히 돈 쓸 생각을 하는 아이의 마음이 한없이 고맙다. 생각해보면 2년 전에는 첫째도 둘째랑 비슷했다. 그래서 또 고맙다. 따뜻한 마음으로 커 준 첫째가, 아직 덜 커서 철없고 귀여운 둘째가.
어설픈 엄마표 경제관념 교육을 하려다가 이번에도 포인트가 어긋났다. 아들들이 아니라 엄마가 배우는 시간이 되어버리는 건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내 인생의 큰 스승 두 사람이 내 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기적이다.